
중국 전기차 1위 비야디(BYD)가 촉발한 극심한 가격 경쟁에 중국 정부가 이례적으로 개입했다. 당국까지 나설 정도로 심각해진 ‘치킨게임’이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가격 폭락과 업계 재편을 가속화 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9일(현지 시간)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최근 비야디, 지리자동차, 샤오미 등 주요 전기차 제조업체 임원들을 베이징으로 소집해 과도한 할인 자제를 촉구했다. 비야디가 촉발한 가격 인하가 중국의 전기차 생태계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판단에서다. 중국 산업정보화부는 이를 ‘내부 소모형 경쟁’이라 표현하며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해친다”고 지적했다.
가격전쟁의 시발점은 업계 1위 비야디였다. 비야디는 지난달 23일 22개 모델을 대상으로 최대 34% 할인을 단행했다. 인기 모델인 소형 전기차 ‘시걸’은 최저 5만5800위안(약 1050만 원)까지 가격을 낮췄다. 이런 공격적 가격 정책은 타 업체들의 연쇄 할인을 유발했다. 이에 대해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는 “무질서한 가격전쟁이 악성 경쟁을 심화시키고 기업 이익률을 압박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의 개입이 전기차 업계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중국 기업들이 지난해 전기차 생산능력을 18% 확대해 1700만 대로 늘린 데 대해 골드만삭스는 “전 세계 필요량보다 300만 대 많다”고 진단했다. 과잉 공급으로 인해 중국 내 전기차 생산 가동률은 56%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은 해외로 공세를 확대하고 있다. 비야디는 올 4월 유럽 시장에서 테슬라를 제치고 순수 전기차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 관세를 부과했지만 중국 업체들의 유럽 진출은 계속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중국의 저가 공세로 신흥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흥국, 중국은 태국(78.2%), 인도네시아(50.8%) 등 동남아에서 수입 전기차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브라질(85.2%), 멕시코(62.5%) 남미에서도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 내수시장도 중국산 전기차의 영향권에 들어섰다. 비야디는 올해 1월 아토3를 3150만원부터 출시했다. 보조금을 적용하면 가격이 2000만 원대까지 낮아지는데 출시 첫 주에만 1000건 이상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발 가격전쟁이 글로벌 전기차 산업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이 25%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면서도 “중국발 가격전쟁이 글로벌 전기차 산업 재편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적자 생존’을 뜻하는 ‘다윈의 바다’에 빠져든 중국 업체들이 촉발한 구조조정이 전 세계로 확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난해 합산 판매량 720만 대선을 기록한 현대차·기아도 저가 중국산 전기차의 사정권에 들어가면서 판매량 감소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