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롤스로이스모터카는 이같은 획일적인 뷔페 대신, 오마카세(셰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고급 요리 코스)처럼 완전히 큐레이션된 경험을 선보이고 있다. ‘스펙터’는 기술의 정점은 물론, 감각의 절정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블랙 배지 스펙터’는 일반석이 아닌 셰프 테이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비밀 메뉴에 가깝다.
스펙터는 롤스로이스 첫 순수 전기차다. 흔한 세단, SUV도 아닌 투도어 슈퍼 쿠페로 시작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결과적으로 브랜드 경험과 정서적 연결성을 가장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선택이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일본 지바현 미나미보소시 마가리가와 프라이빗 서킷에서 만난 아이린 니케인 롤스로이스모터카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사진)은 “롤스로이스가 세단이나 SUV로 첫 전기차 방향을 잡았다면 분위기가 예상 가능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아하고 감성적인 투도어 쿠페를 선보이면서 주목을 확 끌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팬텀 쿠페와 레이스에서 이어지는 전통도 고려됐다”며 “스펙터는 ‘정신적 후속작’이자 새로운 시대를 여는 디자인적 선언”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롤스로이스를 바라보는 고객들의 시선 변화도 감지했다. 스스로 스티어링 휠을 잡고, 롤스로이스 감각을 직접 체험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진 것이다. 아이린 총괄은 “과거 롤스로이스는 명백한 ‘쇼퍼 드리븐(기사 차량)’의 상징으로, 팬텀을 타는 고객 대부분은 뒷좌석에 앉았다”며 “최근에는 컬리넌 같은 SUV 모델이 나오면서 젊은 층의 오너 운전이 확연히 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스펙터 탄생 배경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롤스로이스는 슈퍼 쿠페를 통 새로운 시대의 오너들이 원하는 직접 조율된 감각을 완성도 있게 담아냈다. 지난달 13일 국내에 처음 공개된 블랙 배지 스펙터는 오너 드라이버들이 더 직접적이고 날카로운 감각을 원할 때 선택하는 모델이다. 롤스로이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최고 출력 659마력, 최대 토크 109.6kg·m의 압도적인 성능을 지녔다. 그 운전 경험은 대중적인 전기차의 ‘즉각적 반응’과는 결이 다르다. ‘정제된 폭발’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크리스토퍼 하디 롤스로이스모터카 스펙터 제품 매니저는 “롤스로이스 블랙 배지 모델은 일반적인 퍼포먼스 강화 버전이 아니다”라며 “기존 모델과 동일한 부품을 쓰더라도 서스펜션의 강도, 스티어링의 무게, 감성적 피드백이 다르게 조율된다”고 말했다. 이어 “새롭게 도입된 ‘인피니티 모드’와 ‘스피리티드 모드’는 강력한 출력을 직관적으로 이끌어내며 폭발적인 가속감과 몰입도 높은 주행 경험을 선사한다”며 “배터리를 낮게 깔 수 있는 전기차는 무게 배분 면에서도 유리하고, 우리가 원하는 ‘매직 카펫 라이드’를 재현하는 데도 최적”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롤스로이스가 중점을 두고 있는 가치는 일관성이다. 롤스로이스는 전기차 시대에도 제품의 감성, 디자인, 소재, 그리고 브랜드 경험의 일관성을 유지해야만 고객들이 브랜드를 인식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아이린 총괄은 “가장 중요한 것은 스펙터가 전기차라는 사실보다, 이 차가 ‘롤스로이스’여야 한다는 점”이라며 “전동화라는 기술 변화에도 불구하고, 고객은 여전히 롤스로이스만의 고요함·정교함·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거대한 터치스크린이나 미래적 콘셉트에 집착하지 않고, 고전적인 메탈 송풍구나 고급스러운 소재와 같은 일관된 실내 감성을 스펙터에 고스란히 담아낸 이유다.

롤스로이스의 일관된 승차감도 같은 맥락이다. 크리스토퍼 매니저는 “롤스로이스 모든 모델의 실내는 고급스럽고 화려하다”면서 “이러한 분위기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소음도 차단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레이스카 같은 경우에는 최대한 경량화를 하기 위해서 모든 걸 다 빼낸 반면 롤스로이스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 모든 것들을 추가한다”며 “그래서 무게가 늘어나는 반면, 롤스로이스 모든 차량의 실내는 평온하고 고요함이 느껴지고 전기차 스펙터는 그게 한 단계 더 올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스펙터에는 롤스로이스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배려도 담겨 있다. 가죽과 나무 소재도 윤리적·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수급하고, 멸종 위기 수종은 사용하지 않는다.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롤스로이스는 스펙터를 단순 전기차가 아닌 브랜드 철학이 담긴 ‘예언의 실현’이라고 평가한다. 크리스토퍼는 “창업자들은 100년 전 전기차가 소음도, 냄새도 없기 때문에 롤스로이스에게 완벽한 매칭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며 “그 말은 실제로 현실이 됐고, 롤스로이스는 스펙터 이후에도 계속해서 럭셔리 전기차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역설했다.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