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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포르쉐는 ‘예술’이다

라이프치히=정진수 기자
입력 2025-09-30 11:31:05 업데이트 2025-10-01 11:54:12
포르쉐의 상징인 911 터보 S. 그중에서도 양쪽 측면에 자리한 ‘에어벤트’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 작은 디테일 안에는 포르쉐 디자인의 정수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해당 디자인은 단순한 공기 통로를 넘어 예술과 기술, 전통과 미래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해석됐다. 포르쉐는 이 에어벤트 디자인 하나로도 브랜드 철학을 말할 수 있었다.

포르쉐 디자인 핵심 가치는 단연 ‘협업’이다. 고성능 스포츠카의 정점을 만들어낸 힘 역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생산 기술자가 치열하게 맞물린 유기적 협업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독창성과 함께 조화가 진정한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일찍 깨닫고 실행해왔다.

● 디자인-생산 협업 숙명

포르쉐는 지난 22일(현지시간)부터 양일간 독일 라이프치히 디자인센터에서 ‘디자인과 생산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한국과 독일 언론을 대상으로 한 특별한 워크숍을 열었다. 포르쉐 최신 전기차 ‘카이엔 일렉트릭’ 공개를 앞두고 열린 이번 행사는 브랜드 내면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이날 공개된 디자인센터 내부는 흔한 자동차 디자인 스튜디오를 넘어선 공간이었다. 1:1 클레이 모델에서부터 실제 금형 시제품까지, 디자인과 생산의 경계를 유기적으로 넘나드는 현장이 펼쳐졌다.

포르쉐 지향점은 이곳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 스케치 한 줄이 프레스라인에서 완성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살펴보면 에어벤트와 같은 디테일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디자인이 시작되면 곧바로 CAD 모델링→성형 시뮬레이션→금형 제작→소재 테스트까지 병렬적으로 동시에 진행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포르쉐의 철저한 데이터 기반 협업 구조다.
볼커 쉐닝 포르쉐 조립 생산 플래닝 부문 디렉터가 22일(현지시간) 독일 라이프치히 포르쉐 디자인센터에서 디자인과 생산의 협력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볼커 쉐닝 포르쉐 조립 생산 플래닝 부문 디렉터가 22일(현지시간) 독일 라이프치히 포르쉐 디자인센터에서 디자인과 생산의 협력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 디자인 과정 복잡해도 언제나 ‘포르쉐’여야

디자인과 생산의 결합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각종 규제, 보행자 보호 기준, 조명 법규 등이 실제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에 소재의 다양화·전동화·지속가능성 요구 역시 디자인과 생산의 경계를 흐리고 있다. 하지만 단번에 ‘포르쉐’라는 인상을 줘야 하는 디자인 정체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피터 바르가 포르쉐 익스테리어 디자인 디렉터 “첫 스케치가 나오면 고객이 원하는 미래 이미지를 그려내는 순간부터 금형·툴링·소재 특성·성형 가능성까지 모두 염두에 둬야 한다”며 “포르쉐 911 터보의 경우 복잡한 곡면과 에어로다이내믹 요소, 스포일러 세부 디자인들이 기술적 제약과 맞물려 수차례 재조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911 특정 임장(입체적 돌출부) 길이 300mm 구현은 생산 라인의 능력, 소재의 허용 범위, 금형 여유치 등 기술적 요소들이 모두 맞아야 가능한 작업”이라며 “디자이너가 이러한 기술을 이해하고 고려하면 초기 아이디어 단계부터 생산 가능성을 반영한 설계를 하고, 불필요한 재작업과 타협을 줄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 포르쉐 ‘디자인’ 유기적 협업 결과

포르쉐 디자인팀은 약 150명 규모로, 외장·라이트·트림 등 각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함께 일한다. 베테랑과 신예 디자이너가 조화를 이루며 디자인 언어의 전승과 혁신 사이 균형을 맞춘다.

디자인 초기 단계부터 디자인·개발·생산·품질·규제 준수 등 최소 6개 이상 부서가 긴밀하게 협업해 나간다. 디지털 협업 툴과 실시간 의사결정 구조는 효율성과 정밀도를 동시에 담보한다. 포르쉐는 디자인을 혼자가 아닌 모두의 결과물로 본다.

디자인 초기 단계부터 생산 기획팀이 디자인 작업에 함께 참여해 때론 평행선을 달리며 수많은 논의가 반복된다. 볼커 쉐닝 포르쉐 조립 생산 플래닝 부문 디렉터는 “마칸 후드 성형 과정이 그 대표적인 예”라며 “복잡한 곡면 설계로 인해 강철 소재부터 알루미늄까지 다양한 재료와 성형 기법을 시험했고, 디자인의 미학과 생산 실현 가능성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전통과 혁신의 균형에서 출발한다. 3D 클레이 모델링으로 손의 감각을 살린 아날로그 작업을 거쳐, 이후 디지털 툴링을 통해 색상·트림·라인 하이라이트 등을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한다. 감성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포르쉐 디자인이 완성되는 것이다.

포르쉐 차체 외판은 전량 알루미늄으로 제작된다. 사과를 알루미늄 호일로 감쌌을 때주름 하나 없이 매끄럽게 구현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알루미늄은 강판 대비 ‘스프링백’ 현상이 5배 이상 크기 때문에 성형 과정에서 균열이나 변형이 발생하기 쉽다.

이에 대해 로니 뷔흘러 포르쉐 바디 패널 조립 부문 디렉터는 “소재 공급사와의 긴밀한 협력으로, 알루미늄 조성과 압연 공정을 사전 최적화하고 있다”며 “실제로 디자인 형상 구현을 위해 수차례 프레스 금형 정밀도 테스트와 시뮬레이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조립 과정 역시 철저한 계산과 계획에 기반한다. ‘플러그 앤 플레이’ 방식을 채택한 포르쉐는 인체공학적 동선, 최적화된 라인 설계, 디지털 기반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특히 내연기관과 전기차를 동일 라인에서 유연하게 조립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포르쉐 디자인 완성도는 이음새와 라인에서 드러난다. 파나메라의 직선 이음새, 911의 곡선 스포일러 라인은 단순한 부품 연결을 넘어 브랜드 디자인 언어 그 자체다. 디지털 설계는 이 디테일의 장착성과 조립 용이성까지 고려하며 감성의 디자인과 기술의 생산 사이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 디지털화·소프트웨어 새로운 설계 언어 활용

이와 함께 포르쉐는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통해 개발 기간을 줄이고 비용 절감에 나선다. 특히 차량 설계 초기부터 SDV(Software Defined Vehicle) 개념을 적용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 개발을 실현했다. 이는 단순한 기능 제공을 넘어, 차량의 수명 전체를 아우르는 고객 경험 설계로 나아간다.

포르쉐는 지난 2015년 로봇 자동화 기업 쿠카(KUKA)의 금형 제작 역량을 인수해 자체 생산 능력을 강화했다. 또한 슐러(Schuler)와의 조인트벤처를 통해 2021년 프레스샵을 구축, AI 기반 금형 설비 제어 기술을 도입했다. 그 결과 금형 설비 변경이나 부품 대응 속도가 빨라지고, 다양한 차체 버전 생산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피터 바르가 포르쉐 익스테리어 디자인 디렉터(왼쪽) 알브레히트 라임올트 포르쉐 AG 생산·물류 부문 이사회 멤버(오른쪽)가 23일(현지시간) 독일 라이프치히 포르쉐 디자인센터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피터 바르가 포르쉐 익스테리어 디자인 디렉터(왼쪽) 알브레히트 라임올트 포르쉐 AG 생산·물류 부문 이사회 멤버(오른쪽)가 23일(현지시간) 독일 라이프치히 포르쉐 디자인센터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알브레히트 라임올트 포르쉐 AG 생산·물류 부문 이사회 멤버는 “전 세계 12개국 디자이너들이 함께 포르쉐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끊임없이 미래를 상상한다”며 “퍼포먼스와 감성, 기술과 품질 사이의 균형 등 포르쉐 디자인은 이 복잡한 방정식을 풀기 위해 유연한 플랫폼과 맞춤형 제작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고객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차량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