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동아일보DB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최근 사우디를 전격 방문했다. 이번 방문에서 정 회장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직접 면담하며 현지 생산 및 투자 계획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 살만 왕세자와 정 회장의 독대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과의 관세 후속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자동차 상호관세율이 25%에 묶여 일본보다 높은 ‘역관세’ 상황이 길어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 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지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사우디를 방문해 현지 법인 ‘HMMME’의 생산 공장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국가 중에서도 국부펀드를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 강화와 기업 유치를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중장기적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자동차 허브로 도약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의 방문도 이 같은 사우디의 움직임에 맞춰 시장을 개척하고 투자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앞줄 왼쪽)이 사우디를 방문해 현지 법인 ‘HMMME’의 생산 공장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현대차는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시장 개척에 성공하면 높은 수익성을 보장하는 ‘제2의 미국’ 같은 시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 내수 시장을 제외하고 현대차는 지난해 북미에서 총 119만여 대를 팔았고 이어 유럽과 인도에서 60만여 대를 판매했다. 판매 대수로만 보면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은 인도와 유럽 등이었지만 이들 시장은 저가의 소형차 위주로 형성되어 있어 미래 먹거리인 ‘대형, 고부가가치 차량’ 판매는 쉽지 않았다. 시장 규모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졌던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사우디에 건설 중인 현지 법인 ‘HMMME’ 생산 공장 건설현장. 현대차그룹 제공특히 중동 지역은 ‘오일 머니’ 부호가 많아 향후 더 큰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전망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의 사우디 시장 판매량은 2022년 12만1800대에서 지난해 19만9515대로 가파르게 늘었다. 올해 말까지 총 21만 대 이상을 팔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를 중동 지역의 ‘생산 전진 기지’로 만들기 위한 생산 공장 건설도 진행되고 있다. 이 회사는 사우디 국부펀드와 공동 출자해 중동 최초로 사우디 킹 살만 자동차산업단지 내 ‘HMMME(현대차 사우디 생산법인)’을 건설하고 있다. 내년 4분기 내 공장을 가동하고 연간 5만 대 규모의 생산을 한다는 계획이다. 정 회장도 사우디 방문 일정에서 이 건설 현장을 둘러봤다고 현대차 측은 전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 트로제나 지역에서 시험 주행하는 현대차 수소연료전지차량(FCEV)의 주행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사우디가 탄소중립 시행에 맞춰 에너지 산업 구조를 석유 위주에서 수소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려 하는 점도 현대차의 에너지 사업 방향성과 일치한다. 현대차는 최근 사우디에서 수소연료전지 버스 실증 운행 실험을 시행하고 사우디의 대규모 건설 사업인 ‘네옴 시티’에 친환경 모빌리티 솔루션 도입을 확대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정 회장은 빈 살만 왕세자와의 면담에서 “신재생에너지, 수소, SMR, 원전 등 차세대 에너지 분야에서 사우디와의 협업을 기대한다”며 “사우디의 ‘비전2030’ 달성을 위한 핵심 파트너로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