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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의 혼다’는 왜 전기차 앞에서 무너졌나(feat. 기술의 자만)[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입력 2026-03-26 10:00:00
전기차 시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던 일본 혼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올해 양산 예정이던 전기차 3종을 포함한 거의 모든 전기차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했죠.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자, 전기차 전략을 전면 수정한 건데요.

역시 막대한 투자비가 드는 ‘전기차 올인’은 기업에 너무 위험한 전략인 걸까요. 글쎄요. 혼다가 왜 위기에 빠졌는지를 살펴보면 진짜 원인은 전기차가 아닙니다. 기술적 자만에 빠져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외면한 결과이죠. 레거시 기업의 혁신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사례, 혼다의 위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

혼다의 H 로고는 오랫동안 신뢰와 기술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 혼다는 한때 대단했던 기업이 어떻게 가라앉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AP 뉴시스혼다의 H 로고는 오랫동안 신뢰와 기술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 혼다는 한때 대단했던 기업이 어떻게 가라앉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AP 뉴시스

*이 기사는 3월 25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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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거품 된 전기차 전환 계획
혼다 0 살룬(세단), 혼다 0 SUV, 아큐라 RSX. 혼다의 신형 전기차 3종은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미국 오하이오 공장은 생산설비를 이미 갖췄고, 딜러 교육과 브로셔 인쇄까지 마친 상황이었죠. 2021년 ‘탈엔진’을 선언하며 전기차에 올인해 온 혼다의 미래차 전략이 빛을 보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리고 3월 12일, 이 계획이 물거품이 됐죠. 미베 토시히로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적자 전환을 공식화하면서 신형 전기차 3종의 개발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다”면서 말이죠. 아울러 그는 향후 2년간 최대 2조5000억 엔(약 23조5000억원)의 기록적인 손실이 발생할 거라고도 예고했어요. 1950년대 상장 이후 혼다가 연간 적자를 기록한 건 처음입니다.

혼다의 미베 토시히로 사장. 2021년 취임 이후 혼다의 급진적인 전기차 전환 계획을 발표하며 전기차에 올인했지만, 2026년 3월 12일 신형 전기차 출시 중단을 선언했다. 그는 이에 책임지고 석 달 동안 연봉 30%를 자진 반납한다고도 밝혔다. AP 뉴시스혼다의 미베 토시히로 사장. 2021년 취임 이후 혼다의 급진적인 전기차 전환 계획을 발표하며 전기차에 올인했지만, 2026년 3월 12일 신형 전기차 출시 중단을 선언했다. 그는 이에 책임지고 석 달 동안 연봉 30%를 자진 반납한다고도 밝혔다. AP 뉴시스

미베 사장은 이런 결정의 이유로 미국 전기차 수요 급감을 거론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전기차 보조금은 중단되고, 환경 규제도 사실상 무효화되면서 전기차의 성장세가 꺾였다는 거죠. 어차피 생산해봤자 안 팔릴 게 생겼으니, 지금 접는 게 그나마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란 판단입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 트럼프 행정부 탓이기만 할까요. 보조금 없이 겨루기엔 전기차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닐까요. 또 혼다가 돈 잘 벌고 있다면, 굳이 막대한 매몰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신형 전기차 개발을 포기할 필요까진 없을 텐데요. 문제는 혼다 승용차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단 점이죠. 2019년 정점(532만대)을 찍은 혼다의 전 세계 승용차 판매량은 지난해 352만대로 쪼그라들었어요.

이런 상황에 대해 혼다는 보도자료를 통해 놀랍도록 솔직히 털어놨습니다. “중국에선 소비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기반 기능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혼다는 신규 전기차 제조업체들에 비해 가격 대비 가치를 더 잘 제공하는 제품을 내놓지 못했고, 결국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엔진의 혼다’라는 함정
차체 가볍고, 연비 좋고, 핸들링 정교하고, ‘운전의 재미’를 주는 차. 혼다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이죠. 특히 엔진 기술에 진심인 회사라서 ‘엔진의 혼다’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혼다의 신화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미국은 배기가스를 10분의 1로 줄이는 초강력 규제를 시행했는데요. GM, 포드 같은 큰 기업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로비를 벌일 때, 혼다는 엔진 연소 기술을 업그레이드한 CVCC 엔진으로 이 규제를 세계 최초로 통과합니다. 오토바이 회사로 통하던 혼다가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로 도약하게 된 계기였죠.
1972년 탄생한 혼다의 베스트셀링카 시빅. 당시 시빅에 장착된 CVCC엔진은 촉매 없이도 배출가스 규제를 충족한 혁신적인 고연비 저공해 엔진이었다. 혼다 제공1972년 탄생한 혼다의 베스트셀링카 시빅. 당시 시빅에 장착된 CVCC엔진은 촉매 없이도 배출가스 규제를 충족한 혁신적인 고연비 저공해 엔진이었다. 혼다 제공

역시 기술에서 앞서면 규제를 뚫고 성공할 수 있구나. 본래도 기술을 강조해온 혼다엔 ‘기술이 최고’라는 성공 공식이 자리잡았고요. 지금까지 고집스러울 정도로 하드웨어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엔지니어 중심의 문화를 지키고 있습니다.

특히 혼다는 ‘세계 최초’의 기술을 유독 강조하는데요. 그래서 수소차나 전고체 전지 같은 혁신 기술에 대한 투자를 오랫동안 이어가고 있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자동차 역사상 가장 큰 혁신이라 할 만한 전기차 분야에서 혼다는 왜 이렇게 뒤처지게 됐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기차를 너무 가볍게 봤고, 전기차에 진심이 아니었어요.

혼다는 과거에도 피트EV(2012년), 클래리티 일렉트릭(2017년), 혼다e(2019년) 같은 전기차를 미국과 유럽에서 출시한 적 있습니다. 이 전기차들은 주행거리가 다른 전기차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도심형 소형 시티카 컨셉이었고요. 가성비가 워낙 떨어지다 보니 모두 저조한 판매량을 보이다가 얼마 못 가 단종되고 말았다는 공통점이 있죠. 간보기식으로 전기차를 출시했다가 단종하길 여러차례 반복해온 건데요. ‘전기차=도심 출퇴근용 차량’쯤으로 여겼기에, 그리 진지하지 않았던 겁니다. 당연히 전기차와 관련한 기술을 축적할 수가 없었죠.
혼다가 2012년 출시했던 전기차 ‘피트EV’. 주행거리가 너무 짧고 미국에선 일부 지역에만 출시돼 판매는 매우 저조했다. 혼다 제공혼다가 2012년 출시했던 전기차 ‘피트EV’. 주행거리가 너무 짧고 미국에선 일부 지역에만 출시돼 판매는 매우 저조했다. 혼다 제공

그런데도 혼다는 전기차 기술을 만만하게 봤어요. 복잡한 열역학과 기계 공학의 정점인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하면 전기차는 배터리와 모터를 연결하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구조이니까요. 세계 최고 기술력의 혼다라면 전기차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방심했던 건데요.

혼다의 이런 착각이 드러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2022년 혼다 경영진이 언론 인터뷰를 했어요. 2021년 강화된 환경 규제에 맞춰 혼다가 ‘탈 엔진’, 즉 2040년까지 100% 전동화 달성이란 거창한 목표를 내건 지 막 1년이 지난 무렵이었는데요. 혼다는 당시 업계 선도주자였던 미국 GM과 파트너십을 맺었죠.

왜 GM을 파트너로 선택했는지를 기자가 묻자 미베 CEO는 이렇게 답합니다. “(전기차) 기술적 측면에서 GM와 혼다는 비슷한 수준이거든요.” 도대체 뭐가 비슷하단 건지, 기자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고요.

이어 혼다의 전동화 총괄 임원은 GM의 뛰어난 점은 기술력이 아닌 마케팅 능력이라고 말했어요. 어차피 배터리 기술에선 별 차이가 없다면서 말이죠. “GM이 부럽습니다. 얼티엄(Ultium)처럼 브랜딩을 아주 잘하거든요. 마치 궁극의 리튬 이온 배터리처럼 들리잖아요.” 전기차에 무슨 대단한 기술이 있겠느냐는 식의 자신감 내지 자만심이 드러나는 발언이었죠.

2025년 1월 혼다가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던 전기차 0 시리즈의 세단과 SUV. 특히 0 세단은 날렵하고 미래적인 디자인으로 화제가 됐다. 혼다 제공2025년 1월 혼다가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던 전기차 0 시리즈의 세단과 SUV. 특히 0 세단은 날렵하고 미래적인 디자인으로 화제가 됐다. 혼다 제공

지난 5년간 혼다는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며 전기차 개발에 올인했고요. 업계는 그 거창한 계획을 믿었습니다. 일본 기업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할 거라 본 거죠. 2025년 1월 CES에서 혼다가 공개한 ‘0 시리즈’ 프로토타입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나름 호평을 받기도 했어요. 혼다가 약속한 레벨3 수준 자율주행 기능, 혼다의 과거 휴머노이드 로봇 이름을 딴 ‘아시모 OS’에 대한 기대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번에 혼다는 이 모든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신형 전기차를 판매하는 것보다 이를 취소하고 손실처리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른 거죠. 이로써 결국 확인된 셈입니다. 역시나 혼다는 경쟁력 있는 전기차를 만들어낼 역량도, 의지도 부족했단 걸요. 영국 자동차 매체 탑기어는 이를 “역대 가장 충격적인 자동차 뉴스”라고 평했더군요.

미국 전기차 매체 인사이드EV는 칼럼을 통해 혼다에 이렇게 쓴소리를 남겼습니다. “기술은 저절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기술 발전에는 투자와 시행착오, 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직 남이 하는 것만 보고 배운다면, 당신은 항상 그들 뒤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혼다는 0 시리즈를 완전히 폐기하기 전에 뼈아픈 교훈을 얻었기를 바랍니다.”

닛산과의 엇갈린 운명
혼다 스스로 밝혔듯이, 중국시장의 실패는 혼다를 적자 수렁에 빠지게 만든 주요 요인입니다. 2025년 혼다의 중국 내 신차 판매량은 64만대. 정점(2019년 155만대)과 비교하면 40% 수준으로 확 쪼그라들었죠.

요즘 중국 자동차 시장은 하드웨어보단 자율주행이나 인포테인먼트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이 너무나 중요한데요. 혼다는 이 트렌드를 도통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선 음성 조작 반응속도가 너무 느리다, 현지 앱 생태계와 연동이 매끄럽지 못하다라는 비판이 쏟아지는데요.

과거 혼다는 ‘H’로고가 주는 신뢰도 덕분에 중국에서 꽤 오랫동안 프리미엄을 누렸죠. 하지만 이젠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중국 젊은이들이 보기엔 그저 올드하고 가성비 떨어지는 내연기관차 브랜드일 뿐이죠. 같은 가격이면 혼다 대신 화웨이나 샤오미 전기차를 선택합니다.

혼다가 2022년 중국에서 출시한 중국용 전기차 모델 e:NS1. 전면에 빛나는 H로고로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했지만, 중국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혼다 제공혼다가 2022년 중국에서 출시한 중국용 전기차 모델 e:NS1. 전면에 빛나는 H로고로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했지만, 중국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혼다 제공

혼다의 추락은 동남아시아와 인도 시장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인데요. 왜 인도에서 혼다가 인기를 잃었느냐는 레딧 질문엔 이런 답변들이 올라왔어요. “시장은 변했지만 혼다 제품 전략은 그대로입니다. 구식 인테리어, 밋밋한 화면, 눈길 끄는 기능 없음. CVT(무단변속기)는 부드럽지만 ‘즉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오늘날 구매자들에겐 재미를 주지 못하죠.” “혼다는 고객이 원하는 걸 주지 않고, 자기들이 만들고 싶은 것만 만들면서 판매량이 적다고 불평합니다.”

혼다는 뒤늦게 중국 시장을 겨냥한 전기차 개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상황입니다. “중국 시장의 특성을 감안해 상품력과 비용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카이하라 노리야 부사장)고 밝혔죠.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 전기차 시장의 속도를 혼다가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한편 바로 이 부분에서 불과 1년 만에 혼다와 닛산, 두 일본차 브랜드의 뒤바뀐 신세가 눈에 띕니다. 지난해 2월 두 기업의 합병이 무산됐을 때만 해도, 닛산은 절체절명의 위기였고 혼다는 우위에 있는 듯했죠. (2025년 5월 딥다이브 닛산 편 참고) 하지만 이제 혼다의 연간 예상 적자(최대 6900억엔)가 지난해 닛산의 사상 최대 적자 기록(6708억엔)을 깰 판입니다. 재무적으로 어렵기로는 도긴개긴인 거죠.

닛산이 2025년 4월 중국에서 출시한 전기차 N7는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해 연말까지 5만대 넘게 팔리며 닛산의 중국시장 부활을 주도하고 있다. 닛산 제공닛산이 2025년 4월 중국에서 출시한 전기차 N7는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해 연말까지 5만대 넘게 팔리며 닛산의 중국시장 부활을 주도하고 있다. 닛산 제공

그런데 닛산은 지난해 출시한 ‘중국형 전기차’ N7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중국시장에서 반전에 성공했습니다. 대폭 단축된 개발 기간(기존 4~5년→19개월), 파격적인 가성비(약 2600만원), 철저한 현지화(딥시크의 AI 기술 적용 인포테인먼트)로 이뤄낸 성과이죠. 자존심 따윈 버리고 현지 업체로부터 배운 덕분입니다.

닛산이 이렇게 빨리 따라잡을 수 있었던 건 기본기가 있기 때문이죠. 닛산은 2010년 전기차 리프(Leaf)로 시장을 휩쓸었던 전기차 업계의 개척자였고요. 지난 15년간 전기차 생산 경험과 기술을 꾸준히 축적해왔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적어도 전기차엔 진심이었던 기업인 거죠. 최근 닛산은 2026년 하반기 도쿄에서 로보택시 시험 운행을 시작한다는 계획도 발표했어요.

이게 닛산과 혼다의 다른 점입니다. 두 회사 모두 위기에 처했지만, 적어도 닛산은 미래로 나아가고 있고요. 혼다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채 전기차 계획을 접고 다시 과거로 후진 중이죠. 이 차이가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요.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3월 25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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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