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엔 일렉트릭. 포르쉐 역시 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당초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8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시장 현실을 반영해 보다 유연한 전략으로 선회했다. 어떤 파워트레인이든 현 시점에서 가장 뛰어난 포르쉐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포르쉐는 가장 적극적으로 전동화 전환을 준비해온 브랜드 중 하나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을 발전시켜왔고, 타이칸-마칸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전기차 제품군이 시장에서 안착에 성공했다. 이번에 공개된 카이엔 일렉트릭은 포르쉐 미래 전동화 기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델이다. 포르쉐는 이 차를 통해 브랜드가 축적해온 전동화 기술과 고성능 DNA를 동시에 보여주겠다는 구상이다. 내부에서는 이미 괴물 같은 성능의 SUV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카이엔 일렉트릭 미디어 테크놀로지 워크숍’은 이러한 포르쉐 전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행사장에서는 차세대 고전압 시스템과 열관리 기술, 액티브 섀시 제어 시스템 등이 공개됐고, 실제 주행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됐다.
내년 25주년을 맞는 카이엔은 화려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카이엔은 매 세대마다 최초와 최고를 반복해왔다. 2006년 카이엔 터보는 500마력 이상 출력으로 SUV 성능 기준을 다시 썼고, 트랜스시베리아 랠리를 통해 극한 오프로드 성능까지 입증했다. 이후 하이브리드 모델과 터보 S E-하이브리드 등을 통해 전동화 시대에도 고성능 DNA를 유지해왔다.
신형 카이엔은 모든 면에서 압도적 성능을 지닌 차다. 런치 컨트롤 사용 시 최고 출력은 1156마력, 최대토크는 153.0㎏·m에 달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단 2.5초다. 일반 주행 모드에서도 최대 875마력을 발휘하며, ‘푸시 투 패스(Push to Pass)’ 기능을 사용하면 10초 동안 추가로 176마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대형 SUV라는 차급이 무색할 정도의 성능이다.
113kWh 용량의 고전압 배터리 역시 핵심이다. 배터리는 총 192개 셀로 구성된 6개 모듈 구조를 채택했다. 터보 모델 기준 유럽 WLTP 인증 최대 주행거리는 623㎞에 달한다. 감속 시에는 최대 600kW 수준 회생제동이 가능해 강력한 에너지 회수 성능도 확보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 같은 폭발적 성능을 반복적인 고부하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포르쉐가 별도의 기술 워크숍까지 마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높은 출력 수치를 구현하는 것을 넘어, 극한 상황에서도 성능 저하 없이 지속 가능한 주행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포르쉐 전동화 전략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포르쉐는 이를 위해 포뮬러 E에서 축적한 전동화 기술을 적극 반영했다. 포르쉐는 2019년부터 대회에 참가하며 배터리 열관리와 회생제동, 고출력 전력 제어 기술 등을 발전시켜왔다. 특히 지난해 태그호이어 포르쉐 포뮬러 E 팀은 포디움 피니시 10회, 우승 1회, 폴 포지션 3회, 패스티스트 랩 7회를 기록하며 전동화 경쟁력을 입증했다.
비비엔 슈라이버 카이엔 드라이브 시스템 매니저.이날 가장 먼저 공개된 핵심 기술은 ‘포르쉐 액티브 라이드’ 시스템이었다. 차량에는 네 바퀴 각각에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액티브 댐퍼가 적용된다. 비비엔 슈라이버 카이엔 드라이브 시스템 매니저는 “각 휠마다 하나씩 액티브 댐퍼가 장착돼 있으며 압축과 반발력을 개별적으로 제어한다”며 “거친 노면에서도 35밀리초(ms) 단위로 반응해 차체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시스템은 기존 SUV에 필수처럼 여겨졌던 안티롤바(차체 좌우 흔들림 억제 장치) 없이도 차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포르쉐는 액티브 라이드 시스템만으로 롤 제어 성능을 확보해 보다 민첩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주행 감각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워크숍에서는 새롭게 개발된 후륜 전기모터 구조도 공개됐다. 카이엔 일렉트릭 후륜에는 포르쉐가 새로 개발한 PSM(Permanent Synchronous Motor) 모터가 적용된다. 상단에는 실리콘 카바이드 기반 인버터가 배치된다. 실리콘 카바이드는 기존 실리콘 대비 전력 효율과 열 저항성이 뛰어나 고성능 전기차에 적합한 소재로 꼽힌다.
특히 포르쉐는 냉각 시스템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일반적인 전기차 모터는 냉각 재킷을 통해 열을 식히지만, 카이엔 일렉트릭은 ‘오일 직접 냉각’ 방식을 채택했다. 엔지니어는 “냉각 오일이 중간 재킷 없이 직접 구리 권선 내부를 통과한다”며 “모터가 과열되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냉각 시스템 구조도 상세히 소개됐다. 하나의 통합 펌프가 작동하지만 냉각 유체는 두 종류로 나뉜다. 전기모터 냉각용 오일과 변속기 윤활용 오일을 각각 다른 회로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엔지니어는 “모터 직접 냉각과 변속기 윤활을 동시에 수행하면서도 효율을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열관리 시스템도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였다. 포르쉐는 차량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 순환 시스템처럼 설계했다. 차량 전면부에는 냉각 파이프와 열교환기가 배치된다. 파란색 파이프는 차가운 냉각수, 빨간색 파이프는 열을 머금은 냉각수를 의미한다. 마르코 슈메르벡 카이엔 에너지 시스템 디렉터는 “배터리나 모터에서 발생한 열을 버리지 않고 필요한 곳에 다시 활용한다”며 “배터리와 전기모터에서 나온 열에너지를 히트펌프로 보내 실내 난방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차량 전체를 하나의 폐쇄형 열 순환 구조로 설계했다는 얘기다.
배터리 열관리 기술 설명도 이어졌다. 포르쉐는 배터리 셀 간 온도 편차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마르코 슈메르벡은 “성능과 충전 속도, 배터리 수명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셀이 동일한 열 조건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냉각수 흐름 구조도 세밀하게 설계됐다. 배터리 한쪽에서는 냉각수가 빠르게 흐르고, 반대쪽에서는 그물망 형태의 복잡한 유로를 통해 속도를 늦춘다. 이렇게 하면 배터리 전체에서 균일하게 열을 흡수할 수 있다.
배터리 구조 역시 기존 전기차와 차별화를 뒀다. 포르쉐는 LG에너시솔루션 공급 셀을 기반으로 모듈형 배터리 구조를 채택했다. 배터리는 여러 개 모듈로 구성되며 각각 독립적으로 교체 가능하다. 셀은 알루미늄 프로파일 내부에 직접 삽입되는 구조다. 포르쉐는 충돌 시 외부 충격이 셀 자체가 아닌 알루미늄 구조물을 통해 분산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부위별 충돌 하중에 따라 알루미늄 두께도 다르게 설계된다. 하중이 큰 영역은 두껍게,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부분은 얇게 만들어 안전성과 경량화를 동시에 확보했다.
냉각 시스템 역시 셀 가까이에 배치됐다. 각 모듈 상단과 하단에는 총 12개의 냉각 플레이트가 배치되며 냉각수와 셀 사이에는 얇은 알루미늄층만 존재한다. 이를 통해 보다 빠르고 직접적인 열 제어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카이엔 일렉트릭에서는 각 모듈마다 두 개의 냉각판이 사용된다. 냉각 용량은 가정용 대형 냉장고 약 100대의 성능에 준한다고 한다. 강력한 냉각 성능에도 불구하고 기존 흡입 팬과 비교해 에너지 소비량은 약 15% 낮췄다.
마르코 슈메르벡 카이엔 에너지 시스템 디렉터.수리 편의성도 강조했다. 포르쉐는 셀투팩 방식 대신 모듈 교체형 구조를 택했다. 엔지니어는 “일부 셀만 손상돼도 전체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는 구조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며 “카이엔 일렉트릭은 손상된 모듈만 분리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포르쉐는 이번 테크놀로지 워크숍에서 한국 고객을 위한 카이엔 일렉트릭 기본 사양도 소개했다. 국내 판매 모델에는 열선 윈드스크린과 파노라믹 루프, 14-웨이 컴포트 시트, 앞·뒷좌석 열선 시트와 앞좌석 통풍 시트, 4존 온도 조절 시스템, 4가지 무드 모드, 리어 액슬 스티어링 등이 기본 적용된다.
올해 하반기 국내에 출시되는 카이엔 일렉트릭 가격은 카이엔 일렉트릭 1억4230만 원,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은 1억8960만 원부터 시작한다.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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