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가 실제 도로를 주행 중인 모습. 현대자동차 제공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자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게 이런 건가”하는 말이 먼저 나왔다. 2015년 첫 전기차로 기아 ‘레이EV’를 시승했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이후 미국 테슬라의 모델3와 모델S, 모델X 등 내로라하는 전기차를 타보며 전기차 특유의 ‘부드러움’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휠베이스(앞뒤 바퀴 축 간의 거리)가 3000㎜로 웬만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능가하는 이 널찍한 차를 움직이는데 전혀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의 본격 전기차 시대를 알리는 ‘아이오닉5’의 첫 느낌이다.현대자동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가 실제 도로를 주행 중인 모습. 현대자동차 제공
22일 아이오닉5를 약 2시간 동안 88㎞ 시승했다. 현대차가 오랜 자동차 제조경험을 바탕으로 “쓸만한 전기차를 선보이겠다”며 자신 있게 준비한 차량이다 보니 좀 더 꼼꼼히 보고 싶었다. 시승차량은 아이오닉5 롱레인지 2WD(전륜구동) 모델로 트림(선택사양에 따른 등급)은 프레스티지였다. 가격은 약 5900만 원.● 걱정 많았던 디지털 사이드미러… “이거 물건이네”
운전석에 앉아 기자에게 맞게 차량 설정을 조정했다. 시트 높낮이를 맞추고서 손이간 곳은 좌·우측의 반사경 ‘사이드미러’. 아이오닉5에는 유리로 된 기존 반사경 대신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실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컬러 디스플레이로 보여주는 ‘디지털 사이드미러’가 장착됐다. 10년 넘게 운전하며 유리 반사경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카메라가 비춰주는 것에만 의지해 운전이 쉬울지 걱정도 들었다. 디지털 사이드미러의 화면을 조정하는 건 기존 유리 사이드미러와 같은 방식이었다. 좌·우 모두 운전석 쪽 문 손잡이 아래 부착된 상하좌우 버튼으로 카메라의 촬영 각도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의외로 디지털 사이드미러와 기자는 궁합이 잘 맞았다. 생각보다 넓은 화각은 차량 뒤 2개차선 이상을 충분히 담아내는 건 물론 차량 바퀴 아래의 차선, 차선과 바퀴 사이의 여유 공간까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2개월 전 도심 지하주차장 진입로에서 좁은 곡선 주로를 돌다 차량의 우측 앞 범퍼를 깬 적이 있었기에, 이 정도의 화각이라면 유리 반사경으로 보기 어려운 차량 밑 사각지대를 충분히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차 중에 뜨진 않았지만, 주행 중에는 차로 변경을 위해 좌·우측 방향지시등을 켤 때마다 디지털 사이드미러 모니터에 이동하고자 하는 차로에서 달려오는 두 차량의 거리를 잴 수 있는 기준선도 빨간색으로 노출돼 운전의 편의성을 더했다.
● 미래차 모습 담은 콘솔과 시원한 선루프
아이오닉5가 공개됐을 때 현대차는 ‘유니버설 아일랜드’라는 이름의 중앙 콘솔(보관함)을 강조했다. 기존 차량에서도 볼 수 있는 콘솔이지만, 유니버설 아일랜드는 앞뒤로 140㎜를 이동할 수 있어 사용자 마음대로 1열과 2열의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해준다. 15W급의 스마트폰 무선충전패드와 2개가 마련된 USB 충전 단자는 스마트 기기를 항상 휴대하는 요즘 생활상을 충실히 반영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하지만 스마트 기기에서 쓰이는 USB가 위아래 구분이 없는 ‘C타입’으로 점차 옮겨가는 상황을 감안하면, 양 끝이 모두 C타입인 USB 충전선은 쓸 수 없다는 게 ‘옥에 티’로 느껴졌다.
지붕의 선루프는 차량 지붕 대부분을 유리지붕으로 느낄 수 있는 ‘비전루프’로 거듭났다. 아이오닉5의 비전루프는 차량 어디서나 하늘의 햇살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한번의 버튼 조작으로 지붕이 양 끝으로 열리고, 또는 가운데로 모이며 닫힐 때마다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차가 아이오닉5에 단순히 전기차로서의 성능뿐 아니라 ‘미래차를 타는 재미’까지 모든 승객에게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하는 느낌이었다.
●달리는 재미 느낄 수 있는 힘 좋은 전기차
시승경로는 경기 하남시에서 남양주시 북한강 일대를 거쳐 양평군과 서울 강동구를 지나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과정이었다. 남양주시로 갈 땐 서울양양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인 국도 45호선을 이용했다. 남양주시를 떠나올 때는 어린이 보호구역 등 저속구간이 혼재된 일반 도로만을 거쳤다.
전기차의 특징은 약간의 가속페달 접촉만으로도 금방 속력을 내는 것이다. 엔진에서 연료가 연소하는 과정을 거쳐 힘을 얻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배터리의 전기가 곧장 모터를 돌리는 구조이기에 보다 빠른 응답성을 자랑한다. 그 반대로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모터의 힘도 자연스레 떨어지다 보니 브레이크페달을 밟지 않고도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아이오닉5는 이런 전기차의 특성을 잘 살린 건 물론 다양한 기능을 통해 달리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 남짓으로 고속주행할 때는 미끄러지듯이 부드러운 주행감을, 브레이크페달 사용이 잦은 일반 도로에서는 정차 후 출발할 때 차가 힘들어하지 않는 느낌이 드니 한결 가벼운 운전이었다. 내연기관차에서 신호 대기 등으로 정차할 때마다 잠시 엔진 가동을 멈추는 ‘오토스탑(ISG시스템)’도 당연히 없다. 기자는 정차 후 출발 때 엔진 가동이 느껴지는 느낌이 싫어 오토스탑을 평소 끄고 다닌다.
컬러 디스플레이로 구성된 클러스터(계기판)는 그동안 검정색 계열의 어두운 바탕색을 써왔던 현대차와 기아의 클러스터와 달리 흰색 바탕으로 산뜻한 느낌이었다. 초록색 계열 민트색으로 각종 기능을 애니메이션을 넣어 표현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연비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올해 1월 서울 강동구에 조성한 전기차 충전소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에서 충전 중인 아이오닉5. 현대자동차 제공
충전은 서울 강동구에 자리 잡은 현대차그룹의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에서 체험했다. 현대차가 올해 1월 개소한 이곳에서는 아이오닉5에 처음 적용된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뼈대) ‘E-GMP’에서 경험할 수 있는 초급속 충전이 가능하다. 요즘 패스트푸드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컬러 터치패널에서 안내하는 대로 누구나 쉽게 충전하는 구조였다. 전기차의 다양한 구조를 고려해 충전구 위치에 맞춰 차 위에 있는 충전기를 내릴 수 있고, 충전시간과 충전량, 충전요금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결제는 현대차에 미리 등록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하거나 신용 및 체크카드로 가능하다. 하지만 800V로 18분 내에 배터리 용량을 80%까지 충전하거나, 5분 만에 100㎞ 주행이 가능하도록 배터리를 채우는 건 시승회의 시간 제약 때문에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첫 전용 전기차’의 산뜻한 출발
아이오닉5는 현대차그룹의 첫 전용 전기차다. 내연기관차로는 선보이지 않는 전기차 모델만 갖춘 차종이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로 접어드는 현대차그룹에게는 ‘반드시 성공해야하는 차’다.
약 88㎞를 2시간 동안 주행하고서 측정한 평균 연비는 kWh당 6.2㎞. 고속도로와 일반도로를 모두 거쳐 달렸지만, 당초 알려진 복합기준 kWh당 4.9㎞보다 경제적으로 달린 셈이다. 물론 디지털 사이드미러가 고장났을 경우 이를 대신할 수단이 없거나, 유니버설 아일랜드의 움직임이 좀 뻑뻑하게 느껴져 힘이 들었고, C타입 USB를 지원하지 않는 것처럼 아쉬운 점 또한 없진 않았다. 현대차가 처음 적용한 전자식 변속 다이얼 또한 레버(막대) 끝의 다이얼을 잡아서 돌려야하기에, 레버 자체를 손끝으로 툭툭 쳐서 움직이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방식보다는 불편했다.
하지만 전기차 자체로서는 합격점을 주고 싶었다. 2010년 애플 ‘아이폰’의 대항마로 출시된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가 생각났다. 디자인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사용자인터페이스(UI)는 아이폰보다 약간 아쉽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성능 좋고 웬만한 앱을 어려움 없이 동작할 수 있는 스마트폰 본연의 기능에 충실했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2021년의 감성을 갖고 등장한 아이오닉5가 잘 시작된 만큼 앞으로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전용 전기차들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