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에 종사하는 김모 씨(37)는 국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구입을 결정했다가 최근 취소했다. 그러고는 현대자동차의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를 계약했다. 차를 인도받기까지 꼬박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김 씨는 편도 약 30km의 출근길과 최근 크게 오른 기름값을 감안해 전기차가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름값이 고공비행하면서 연료비 부담이 적은 친환경차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가뜩이나 자동차업체들이 반도체 공급난을 겪고 있는데 신청자들이 몰리자 일부 전기차는 계약 후 14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17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전국 휘발유 가격은 L당 평균 1724.49원이다. 지난해 2월 월평균 가격인 L당 1463.2원보다 17.9% 올랐다. 지난해 11월 유류세 인하 효과로 떨어지던 국내 기름값은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로 국제 유가가 뛰면서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유가 강세 전망에 소비자들은 차량 구매 시 연료소비효율(연비)부터 따지고 있다. 수입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모델들이 최근 예상을 뛰어넘게 많이 팔리는 걸 유가 말고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문제는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원인은 반도체 공급난이다. 전기차는 가솔린이나 디젤 등 내연기관에 비해 반도체 사용량이 통상적으로 많다. 전 세계적 반도체 공급난이 친환경차 생산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그러니 계약자가 몰려들어도 실제 판매량은 바닥을 기고 있다. 현대차의 1월 내수 판매량은 4만6205대로 지난해 12월보다 30.1% 감소했는데 전기차는 76.6%나 떨어졌다. 실제 소비자들에게 인도할 수 있는 차가 없어 나타난 수치다.
전기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은 가솔린 모델에 비해 몇 배는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 아이오닉5, 기아 EV6, 제네시스 GV60 등 이 회사 전용 전기차들은 모두 계약 후 12∼14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하이브리드차들도 마찬가지. 싼타페의 대기기간은 가솔린 모델이 3개월인 반면 하이브리드 차량은 8개월 이상 걸린다.
대기 기간이 너무 길다 보니 자동차 커뮤니티 등에는 “새 차를 빨리 받는 게 낫다. 절약되는 연료비도 기대했던 것만큼 크지 않다”는 반응도 일부 나온다. 그러나 친환경차 쏠림 현상이 대세가 되고 있다고 자동차업계는 보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올해 2분기(4∼6월) 이후 반도체 부족 문제가 해소되면 공급도 서서히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