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7일 중고차 사업의 구체적 실행 방안을 공개하고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현대차는 오래전부터 시장 진출 의사를 밝혀 왔지만 구체적 사업계획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고차 업계는 물론 국내 자동차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대기업 진출을 막아온 ‘생계형 적합업종’에 중고차 사업을 재지정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5년 미만 중고차 새 차 수준으로 상품화”
현대차가 이날 밝힌 사업계획의 핵심은 구입 후 5년, 주행거리 10만 km 이내의 자사 차종에 대해 200여 개 항목의 품질검사를 실시한 뒤 새 차 수준의 상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증 중고차’ 판매는 수입차 브랜드들이 국내 시장에서 판매하는 중고차와 동일한 개념이다. 현대차는 중고차 진단과 정비, 내·외관 개선까지 할 수 있는 인증 중고차 전용 하이테크센터도 구축한다.
현대차는 오프라인 위주였던 중고차 시장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가져온다는 계획도 밝혔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 기술을 적극 도입한다.
소비자와 판매자의 정보 비대칭 탓에 대표적 ‘레몬 마켓(저급품만 유통되는 시장)’으로 여겨지는 중고차 매매 환경 개선에도 나선다. 구입하려는 중고차의 성능, 침수 및 리콜 여부, 적정 가격, 허위 매물 가능성 등의 정보를 분석하는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가칭 중고차연구소)’을 만들기로 했다.
현대차는 또 소비자가 타던 차량을 회사가 매입하고, 신차 구매 시 할인을 제공하는 보상판매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이날 사업계획 발표의 배경에 대해 “중고차 시장 진출이 소비자와 중고차 시장 발전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추진 방향을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는 현대차 브랜드 차량만 포함됐다. 제네시스와 기아는 향후 별도 계획을 내놓기로 했다.
○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가 마지막 고비
현대차의 중고차 사업이 실현되기까지는 아직 고비가 남아 있다. 이르면 다음 주 진행될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에서 중고차 매매업이 다시 지정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제한된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과 별개로 중고차 업계가 제기한 소상공인 사업 영역 보호를 위한 ‘사업조정 신청’에 따라 중소벤처기업부의 실태조사도 예정돼 있다. 결과에 따라서는 사업 내용에 대한 합의나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현대차는 기존 중고차 업계의 반발을 의식해 이날 계획안에 시장 점유율을 자발적으로 제한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2022년 2.5% △2023년 3.6% △2024년 5.1% 이내의 점유율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중고차 업계는 불만이 크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현대차가 소위 A급 중고차 매물을 독점하겠다는 의도”라며 “상생하겠다고 내놓는 프로그램들의 실상은 결국 중고차 업계를 고사시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