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과 인도 등 신흥 전기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업체들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인 데다 각국 정부가 전기차 보급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어 친환경차 시장 선점의 적기라는 판단에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는 2024년까지 태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승용차를 순수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우선 플러그인하이브리드를 앞세우되 배터리 전기차 판매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미쓰비시는 2020년 기준 태국 시장 점유율 4위 업체다.
일본 스즈키는 전날 인도에 약 1조5000억 원을 투자해 전기차 생산 규모를 늘리고 배터리 공장을 신설하겠다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인도 자동차 시장의 약 45%를 점유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스즈키는 2025년부터 전기차를 본격 생산해 시장 지배력을 확고히 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아세안과 인도에 전기차 투자를 확대하는 건 관련 시장이 빠르게 커질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태국은 지난해 75만4254대가 팔린 아세안 두 번째 자동차 시장이다. 그러나 순수 전기차 판매량은 아직 2000대 안팎에 그치고 있다. 태국 정부는 지난해 2030년까지 전체 자동차 생산량 30%를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올해 2월에는 전기차 제조사들에 대규모 인센티브를 준다는 정책도 내놨다.
아세안에서 자동차 시장 규모가 가장 큰 인도네시아도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차 구매자에게 면세 혜택을 주는 등 2035년까지 친환경차 보급률 3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세계 5위 자동차 대국 인도는 2030년 전기차 점유율 30%를 목표로 각종 세제 혜택을 내걸고 있다. 특히 2곳에 불과한 전기차 생산 시설을 늘리기 위해 해외기업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이런 정책적 지원을 활용해 적극 투자에 나서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1월 준공된 인도네시아 브카시 공장에서 전기차 아이오닉5를 양산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이 공장을 전기차 생산 거점으로 삼아 인도네시아는 물론 수출 시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세안 지역에 영향력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대만 폭스콘은 지난해 태국에 약 2조 원을 투자해 전기차 생산 설비를 짓기로 했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태국서 전기차 생산을 시작했다.
완성차 업체들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등 친환경차로 패러다임이 바뀌면 일본 업체가 독식하다시피 해온 아세안과 인도 시장의 구도를 뒤흔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세안의 경우 일본 업체 점유율이 90%를 넘나들고 있다. 태국 전기차 시장 절반 이상을 차지한 상하이자동차, 태국 GM 공장을 인수해 전기차 생산에 나선 창청자동차(長城汽車) 등 중국 업체들의 선전도 각국 정부의 친환경차 보급 정책과 맞물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각에서는 인도와 아세안 지역의 낙후된 전기차 관련 인프라, 상대적으로 고가인 전기차를 구매하기 어려운 낮은 소비 수준 탓에 신흥국 전기차 시장 전망을 낙관해서는 안 된다는 반응도 나온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지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대의 차량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인프라 보급 상황까지 고려해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