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등록 택배 차량들은 경유차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대기관리권역법’ 개정안이 4월 3일 시행된다. 법안 시행까지 8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택배 업계는 대혼란에 빠졌다. 노후 차량을 바꾸거나 새로 택배업을 시작하려면 전기차 또는 액화석유가스(LPG) 등 친환경 택배차량을 마련해야 하는데 공급량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경기 지역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는 A 씨는 16일 “경유차를 30만 km 넘게 타서 지난해 3월 ‘봉고3 전기자동차(EV)’를 주문했는데 아직도 인도받지 못했다”며 “전기 화물차량 대기가 너무 많이 밀려 있는데 당장 4월부터 법적으로 경유차를 못 사게 하면 아우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욕만 앞서지 말고 제발 현실을 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택배기사 B 씨는 “전기차는 바로 구하지도 못하는데 4월부터는 급하게 다른 경유차를 사지도 못한다”며 “타고 다니던 차량이 고장 나거나 사고가 날 경우 바로 일자리를 날리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택배 기사들 사이에서는 ‘임시 일자리를 알아 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당장 법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수급 불균형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기존 차량 폐차 후 신차 등록 및 신규 택배사업 진출 등을 포함해 연간 5000대 이상이 신규 등록된다. 그런데 친환경 화물차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1∼11월 국내에 신규 등록된 택배 차량은 약 6700대다. 이 중 전기차량은 900여 대에 불과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는 4월부터는 월 500∼600대의 차량이 필요한데 전기차는 매월 100대가 채 공급되지 않는 셈이다.
국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택배용 전기 화물차는 ‘현대차 포터2 일렉트릭’과 ‘기아 봉고3 EV’로 지난해 각각 약 2만 대와 1만5000대가 생산됐다. 그러나 차량용 반도체 부족과 원자재 공급 차질 등으로 생산이 제 속도를 못 내며 주문을 하면 인도까지 8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 집 또는 택배 터미널에 충전 시설이 없는 기사들은 전기차를 구한다고 해도 걱정이다.
한 택배업체 임원은 “중고 택배 전기차의 가격도 거의 신차에 맞먹는다. 미리 전기 택배차 여러 대를 계약해 놓고 돈을 더 얹어 판매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전기차를 주문해도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예 법안 시행 전 경유차로 한 번 더 바꾼 사람도 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이러다 중국산 전기 화물차가 시장을 파고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친환경 정책들의 속도 조절 필요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법적으로 허용되는 LPG 화물차는 전기차의 70%밖에 파워가 나오지 않아 택배기사들은 거의 선택하지 않는 차량이다. 짐의 무게에 따라 오르막길에서 운행이 어려울 수도 있어서다. 환경부 관계자는 “정부와 현대차가 연구개발을 통해 경유차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출력을 가진 ‘직분사 LPG차’를 개발 중”이라고 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대기권역법은 2019년 4월 제정돼 4년간 유예기간이 있었다. 하지만 수급 상황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법 시행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현장 반발이 이어지자 국회에서 내년 1월 1일까지 시행을 유예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국회에서 이렇다할 움직임 없이 계류 중이어서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