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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와 벤츠의 서로 다른 중형 전기차 만드는 방식

ev라운지
입력 2023-07-03 11:26:00업데이트 2023-07-03 11:46:46

BMW와 벤츠는 근 수십년간 3시리즈 vs C클래스, 5시리즈 vs E클래스, 7시리즈 vs S클래스 등, 승용차 세그먼트에서 끝없는 경쟁을 통한 발전을 지속하며 고급 승용차의 세계 표준과도 같은 존재로 거듭났습니다. 양사의 수많은 라인업이 서로 경쟁상대지만, 그 중 정말 오랫동안 경쟁해오고 브랜드 내 중요성이 높은 차종은 E세그먼트 세단인 5시리즈 및 E클래스일 것입니다.


이 둘은 서로 몇 년 정도 텀을 두고 세대교체를 이루며 경쟁을 해왔는데, 이번 2023년에는 이례적으로 딱 한 달 텀을 두고 비슷한 시기에 세대교체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전기차에 대해 서로 접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BMW와 벤츠의 최신예 중형차들을 보면서 두 메이커의 전기차에 대한 관점 차이를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벤츠는 EQE라는 이름의 전기차 세단을 2022년 먼저 선보였고, 2023년에 E클래스 신형 모델(W214)을 뒤이어 공개했습니다. 두 모델은 서로 플랫폼과 디자인이 완전히 다릅니다. EQE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고안한 EVA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공기저항 최적화를 위해 마치 큰 조약돌을 보는듯한 둥근 차체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반면 E클래스 신형은 내연기관 후륜구동차를 위한 모듈형 플랫폼인 MRA2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EQE와 다르게 내연기관 후륜구동 세단 특유의 3박스 세단 디자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BMW는 2023년 5월 5시리즈 신모델(G60) 공개시점에 전기차 i5와 내연기관차 5시리즈를 동시에 공개했습니다. 전기차 EQE와 내연기관 E클래스의 플랫폼이 완전히 다른 벤츠와 달리, BMW 전기차 i5와 내연기관 5시리즈는 플랫폼이 동일합니다. BMW는 2010년대 중후반부터 CLAR라고 불리우는 플랫폼을 고안했는데, 순수전기차, 내연기관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두 공용 가능한 구조가 특징입니다.
때문에 이번 5시리즈(내연기관차)/i5(전기차)는 생김새가 동일합니다. 심지어 머플러까지 범퍼 뒤에 안 보이게끔 숨겨두었기에, 전면 키드니그릴과 후면 트렁크의 BMW 전기차 브랜드 ‘i’ 로고를 발견하기 전까진 구별할 방법이 없습니다.


벤츠의 전기차 전용 EVA 플랫폼은 배터리를 넓고 평평하게 앞/뒷바퀴 사이에 까는 방식이기에, 승객석의 바닥 공간은 무엇 하나 걸리는 것 없이 완전히 평평하게 쓸 수 있고, 앞/뒷바퀴를 최대한 밖으로 밀어내 넓은 휠베이스(3,120mm)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반면 BMW의 전기차-내연기관차 공용을 위한 플랫폼은 실내 공간 구성상의 한계를 안고 가게 됩니다. 후륜구동 내연기관차는 앞바퀴 뒤로 두꺼운 트랜스미션과, 동력 전달을 위한 미션 터널 공간이 필요하다 보니 승객석 가운데에 솟아오르는 부분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차도 이 구조를 똑같이 공용하면서 만들다보니 배터리가 기존 미션터널의 형상을 따라 T자형으로 솟아오르는 듯한 형상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후륜구동 내연기관차들이 실내 거주성 측면에서 항상 약점으로 지목되던 것이 미션 터널 자리로 인한 가운데 승차/수납공간이 좁아진다는 점이었는데, 이 구조를 똑같이 쓰는 BMW i5 또한 동일한 단점을 안고 가게 됩니다. 평평한 배터리를 쓰면서 휠베이스가 3.1m가 넘는 벤츠 EQE의 넓고 걸리적거릴 것 없는 뒷좌석과 비교될 수밖에 없습니다. BMW 신형 5시리즈 및 i5의 휠베이스는 2,995mm로, 이전 모델 대비 살짝 길어지긴 했지만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쓰는 EQE에 비교해 어쩔 수 없이 짧습니다. 직접 타보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휠베이스의 차이에 기인한 뒷좌석 거주성 차이가 예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부 순수전기차용 배터리 설치를 전제로 한 플랫폼을 새로 쓰다보니 전고가 기존 모델 대비 36mm나 높아졌습니다. 시각적으로 이 차가 조금이라도 낮은 것처럼 보이게끔 착시 현상을 위한 장치로 마치 SUV처럼 차체 측면 하단에 플라스틱 패널을 덧대었는데, 내연기관 전용으로 나왔던 과거의 5시리즈와 실물을 비교하면 껑충하고 둔해 보이는 느낌을 감추지 못할 것입니다. 길쭉하면서 낮은 날렵한 비례의 디자인으로 근 수십년간 럭셔리 비즈니스 세단 체급 중 가장 스포티한 이미지를 가진 5시리즈였지만, 이번 신모델에서는 그런 호평이 유효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한편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완전히 새로운 전기차를 내세운다는 것이 무조건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전기차는 우선 배터리가 차지하는 원가가 매우 높기에, 필연적으로 차값이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내연기관차는 기존 플랫폼을 조금씩 개량하면서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투자비가 비교적 덜 들어가지만, 밑바탕부터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투자비도 막대하게 많이 들어가고, 아무리 파생 모델을 다양하게 내놓는다 한들 높은 가격 특성상 내연기관차 대비 담보 가능한 판매량이 현실적으로 작기 때문에 투자비에 대한 회수 또한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BMW는 특히 2010년대 초 i3를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자신만만하게 선보였다가 다양한 후발업체들에 의해 무참히 추월당하고 실패한 전력이 있기에, 같은 길을 다시 가기보다는 BMW 자신이 수십년간 안정적으로 판매해온 내연기관차 플랫폼의 개량과 효율화에 집중하는 방향을 택하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BMW는 i5와 5시리즈를 동일한 플랫폼 및 디자인으로 내놓으면서 시장의 실 선호도에 따라 전기차 i5와 내연기관차 5시리즈의 생산량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을 꾀할 수 있고, 역으로 전기차라고 해서 내연기관차와 무조건 다른 디자인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점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조약돌 모양으로 디자인을 완전히 새로 짠 벤츠 EQE의 공기저항계수는 0.22Cd인데, EQE에 비해 훨씬 투박한 것처럼 보이는 BMW i5의 공기저항계수가 0.23Cd(i5 40, i5 50 기준)로 의외로 큰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BMW의 주장에 설득력이 더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iX를 제외한 모든 전기차(iX1, iX3, i4, i5, i7)를 기존 내연기관차의 개조전기차로 선보이며 ‘익숙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를 주장하는 BMW, 그리고 신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며 ‘새로운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를 주장하는 벤츠. 특히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관심 대상인 중형 고급 세단 장르에서의 두 메이커의 서로 다른 행보가 과연 어떤 판매 실적 양상으로 이어질지 궁금해집니다.
내연기관차 부문에서는 BMW와 벤츠의 두 강호를 뛰어넘는 럭셔리 승용차가 나오기 어려웠지만, 전기차 분야에서는 오히려 예상 외의 후발주자가 판을 흔들며 이 둘의 전통적 지위를 위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V라운지 필진 아방가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