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도입한 이드라의 6000t급 기가프레스. 테슬라는 전기픽업 트럭 사이버트럭 출시를 앞두고 올해 미국 텍사스 공장에 9000t급 기가프레스를 설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드라 공식 홈페이지 캡처
미국 테슬라발(發) ‘공정혁신’이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테슬라가 지난해 말부터 대대적인 가격 인하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기가캐스팅’이라 일컬어지는 생산 공정 혁신이 뒷받침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을 포함한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향후 주력이 될 전기차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새로운 생산 시스템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비용 40% 줄인 테슬라 기가캐스팅
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이탈리아 이드라(IDRA)와 공동 개발한 무게 420t, 압력 세기는 6000t급인 기가프레스 설비를 2020년 캘리포니아 공장에 도입했다. 이 설비는 금형 틀에 알루미늄 합금 소재를 넣어 초대형 프레스 장비로 후면 언더보디 등의 차체를 용접 없이 한 번에 찍어낸다. 이를 통해 70개 금속패널을 5000여 곳 용접해야 차체 하나를 만들던 것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테슬라는 이 공법으로 생산 속도를 높이면서도 비용은 40% 가까이 절감했다. 로이터통신이 올해 초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차량 1대당 순이익은 테슬라가 9574달러(약 1268만 원)로 제너럴모터스(2150달러), 비야디(1550달러), 도요타(1197달러) 등보다 월등히 높다. 현대차(927달러)의 10배 이상이다. 테슬라는 사이버트럭을 생산할 텍사스 공장에는 캘리포니아보다 큰 9000t급 설비를 설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완성차 업체들 잇달아 생산 혁신 추진
현대차는 최근 울산 남구 매암동 엔진공장에서 차량용 경량 소재 개발과 초대형 주조 등 생산 신기술 실증을 위한 사업에 착수했다. 기존 프레스, 차체, 도장, 조립 공장 순서로 이뤄지던 공정과는 다른 방식의 생산 체계를 개발하기 위함이다. 현대차 노사는 5월 중앙노사협의회를 통해 이 실증사업 진행에 합의했다. 지난달 21일에는 ‘하이퍼캐스팅’이란 상표권까지 출원했다. 현대차 측은 다만 “생산 신기술 개발을 위한 실증 사업에 착수한 것은 맞지만 실제 도입 여부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재고 없이 주문 즉시 생산하는 체제인 ‘적시 생산’ 혁신을 선도했던 일본 도요타도 기가캐스팅 도입에 나섰다. 도요타는 6월 열린 ‘도요타 테크니컬 워크숍’에서 차체를 전면과 중앙, 후면 등 세 가지로 나누고 이를 일체형으로 조립하는 제조 방법을 공개했다. 2026년 출시 예정인 차세대 전기차부터 이런 생산 방식을 도입할지 여부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그룹은 전기차 전환 정책인 ‘트리니티 프로젝트’를 통해 2026년 신설되는 볼프스부르크 공장에 최신 알루미늄 주조 기계를 들인다는 방침이다. 스웨덴 볼보자동차 또한 지난해 4월 토슬란다 공장에 ‘메가캐스팅’ 공정을 도입해 효율성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최소 공간만 활용하는 셀 방식도 관심
컨베이어벨트를 대체하는 셀 방식 공법도 업계가 새롭게 주목하는 생산 형태다.
영국 전기 상용차 스타트업인 어라이벌은 물류센터 형태의 작은 공장(마이크로팩토리)을 영국과 미국 등에 만들고 있다. 대규모 부지가 필요한 컨베이어벨트 대신 무인 운반대(AGV)로 지정된 셀(Cell)로 부품을 운반한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20m 길이의 이 셀에서 조립 로봇들이 차 한 대를 완성시키는 방식이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여러 차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 하반기(7∼12월) 가동 목표로 경기 화성시에 짓고 있는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공장에 셀 방식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공장에 옵션 장착장(셀)을 따로 마련해 숙련된 소수 직원이 차 한 대를 만들 때까지 모두 총괄하는 방식이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헨리포드식(컨베이어벨트) 공정 혁신이 나온 이후 100년간 꾸준히 높아지던 자동차 생산 효율성은 2010년을 기점으로 정체돼 왔다”며 “테슬라의 공정 혁신은 미래 차 전환기 공정 혁신 붐이 일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가캐스팅 |
초대형 알루미늄 다이캐스팅(금형주조) 장비 ‘기가프레스’로 거대한 금속판을 틀에 넣어 차체 같은 부품을 한 번에 찍어내는 공법이다. 생산 기간과 비용을 대폭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