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가 세계 최초로 24시간 무인 로보택시 운행을 허가한 지 2주일쯤 지난 8월 17일(현지시간), 제너럴모터스(GM) 자회사 크루즈의 로보택시가 소방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샌프란시스코 소방국 제공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자율주행 자회사 크루즈는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무인(無人) 로보택시 운행을 중단했다.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24시간 상업운행을 시작한 후 두 달여 만이다. 크루즈 로보택시가 샌프란시스코 시내 교차로에서 뺑소니를 당한 여성 보행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끌고 가는 사고를 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피해자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이 일로 카일 보크트 크루즈 최고경영자(CEO)가 사임했다.● 자율주행차 투자 시장에 ‘찬바람’
미래 먹거리 시장으로 각광받던 자율주행차 시장이 각종 악재에 시름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소방 당국은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서 로보택시가 본격 시범 운행을 시작한 지난해 4월부터 올해 8월까지 소방차 및 구급차가 로보택시에 의해 방해를 받은 사례가 73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 중 70건은 올해 발생했다.
문제가 잇따르자 투자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27일 한국자동차연구원(한자연)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업체 중 연구개발(R&D) 투자액을 공개한 미국 GM, 독일 폭스바겐과 BMW, 일본 도요타, 중국 지리자동차 등 5개사의 올해 1∼9월 자율주행차 관련 투자액은 4700만 달러(약 600억 원)에 그쳤다. 아직 3개월이 남아 있긴 하지만, 작년 38억1200만 달러(약 5조 원)에 비해 급격히 낮아진 수치다.
올해 자율주행기술 투자가 식은 것은 우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전기차 부문에 기업들의 투자가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5개사의 전기차 관련 투자액은 작년 20억7000만 달러에서 올해 27억9300만 달러로 35%나 늘어났다.
거기에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의 선두 그룹에 있던 크루즈와 웨이모 로보택시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자동차 업계가 R&D 투자에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자율주행차가 긴급 출동한 소방차를 가로막는 등 여러 사건이 일어나자 소비자는 물론 자동차 업계에도 부정적 이미지가 빠르게 퍼졌다”고 했다.
다만 일시적 투자 위축일 뿐 자율주행차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미 경영컨설팅 회사 매킨지앤드컴퍼니의 1월 모빌리티 수요 전망에 따르면 2022년 최대 550억 달러(약 71조8000억 원) 규모로 추정된 자율주행차 시장(주행보조 포함)은 2035년 최대 3950억 달러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 한국, 2027년 자율주행 시대 목표
국내에서도 완전 자율주행차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아가 올해 신차 ‘EV9’에 레벨3(조건부)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키로 했던 계획을 포기한 게 대표적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실제 도로 주행 상황에서 다양한 변수를 마주하고 있다”며 “고객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2027년 완전 자율주행 ‘레벨4’(고도) 시대 개막을 위해 지난해 마련한 단계별 전략(로드맵)을 차질 없이 진행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토부는 6월 기존 12개 시도 16개 지구였던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를 15개 시도 24개 지구로 늘렸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달 초까지 시범운행지구 운행 허가를 받은 420여 개 자율주행차 중에 인명피해나 큰 차량 간 접촉 사고도 없었다”며 “수요 응답형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서비스에 대한 검증도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