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시티에 위치한 현대자동차그룹 모하비 주행시험장에서 현대차·기아 차량들이 모하비 사막의 비포장도로를 내달리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캘리포니아시티의 현대자동차그룹 모하비 주행시험장은 극한의 환경을 갖춘 곳이다. 11일(현지 시간) 찾은 시험장은 사방을 둘러봐도 지평선까지 사막과 산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황량했다. 7월에는 최고기온이 섭씨 40도에 달하고 지표면 온도가 54도까지 달궈진다. 반면 겨울철에는 온도가 0도 가까이로 떨어지는 데다 모래폭풍이 몰아치기도 해 계절의 매서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사람이 살기 쉽지 않아 조슈아 나무나 야생동물들이 지키던 지역이다. 규모도 여의도(290만 ㎡)의 약 6배인 1770만 m²(약 535만 평)에 달해 한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다. 현대차·기아가 2005년 6000만 달러(약 800억 원)를 투입해 마련한 모하비 주행시험장은 현대차그룹의 북미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극한의 날씨를 이겨내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비포장도로 테스트를 거쳐 차량 품질을 개선한 덕이다. 연 300대가량의 차량이 비포장도로, 염수 부식시험로, 고속 주회로 등에서 12가지 혹독한 테스트를 받는다. 그 결과 주행시험장이 완성되기 직전인 2004년 현대차그룹의 연간 미국 판매량은 약 69만 대였으나 지난해에는 165만 대로 2.4배로 늘었다. 미국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스텔란티스를 누르고 처음으로 미국 시장 판매 4위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차그룹은 영토가 넓은 미국에 비포장도로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본래 1곳이던 비포장 코스를 현재 7곳으로 늘렸다.
11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시티에 위치한 현대자동차그룹 모하비 주행시험장에서 테스트 차량이 마치 바닥에 바위가 있는 듯한 비포장도로 코스를 통과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이날 북미에서만 판매하는 현대차의 픽업트럭 ‘싼타크루즈’를 타고 시험장 내 비포장도로 코스 한 곳을 내달려 봤다. 포트홀이 파여 있듯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는 차체와 바퀴를 연결해 주는 서스펜션이 버텨줘 차량의 덜컥거림이 크지 않았다. 비탈길에서도 잡목과 돌부리 가득한 도로를 힘 있게 올라서는 것이 느껴졌다. 이승엽 현대차그룹 미국기술연구소 부소장은 “북미 시장에서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60%, 픽업트럭이 2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약 80%의 차들이 비포장 도로를 주행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며 “특별히 여러 가지 비포장도로 시험장을 따로 설치해 개별 단계별로 검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엔 기아의 고성능 전기차인 ‘EV6 GT’를 타고 아스팔트가 깔린 ‘와인딩(급커브) 테스트 도로’를 시속 100km로 고속주행을 해봤다. 직선 구간에선 빠르게 치고 나가는 재미를 느꼈다가도 급커브 구간이 연달아 두 번 나오자 우왕좌왕하며 운전대를 꺾느라 식은땀이 났다.
또한 ‘재료환경 시험장’에서는 마치 빨래처럼 널려 있는 각종 자동차 부품을 볼 수 있었다. 모하비의 뜨거운 태양과 거센 바람을 부품들이 얼마나 견뎌내는지 살피기 위한 곳이다.
앞으로는 계속 차종이 늘어날 전기차에 대한 테스트가 관건이다. 차량 하부에 설치되는 전기차 배터리가 비포장도로 돌부리에 부딪히더라도 여간해선 문제점이 없는지 내구성 테스트에 집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기차는 배터리 때문에 동급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300∼400kg 무겁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매슈 알 시어 모하비 주행시험장 운영 파트장은 “전기차는 최대 토크(회전력)에 금방 도달하기 때문에 바퀴가 갑자기 미끄러지는 ‘휠 슬립’ 현상도 발생하기 쉽다”며 “이에 대한 시험과 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시티=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