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본이 인수한 스웨덴 완성차 회사 볼보자동차가 2030년부터는 순수전기차(EV)만 판매하겠다는 기존 계획을 철회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덮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볼보는 4일(현지 시간) 2030년부터는 순수 전기차 모델만 판매하겠다는 기존 계획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그 대신 2030년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순수 전기차를 합친 매출이 전체의 약 90%를 차지하는 것을 새 목표로 삼았다. 2021년에 내세웠던 전기차 전환 계획에서 후퇴한 것이다.
당초 내년 목표는 순수 전기차만으로 전체 판매량의 50%를 달성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순수 전기차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까지 합쳐 50%를 달성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짐 로완 볼보자동차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을 통해 “전기차로의 전환은 단순한 문제가 아닐 것”이라며 “고객과 시장이 서로 다른 전기차 채택 속도를 보이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볼보가 전기차 전환 전략을 축소한 것은 전기차 캐즘이 예상보다 오래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전 문제와 가격, 인프라 부족 등이 원인으로 발생한 캐즘이 심상치 않다고 본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적어도 향후 2∼3년은 캐즘의 여파가 이어질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2030년까지 모든 모델을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은 촉박하다”고 말했다.
‘100%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강화’로 선회
전기차 수요둔화에 전략 수정
“캐즘 종식은 배터리값에 달려”
“캐즘 종식은 배터리값에 달려”
전기차 전환 목표를 수정한 것은 볼보뿐만이 아니다. 미국 테슬라는 올해 5월 ‘영향 보고서 2023’에서 2030년에 연간 2000만 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2021년과 2022년 연례보고서에는 빠짐없이 제시됐던 내용이 이번에는 자취를 감췄다. 전기차만 판매하는 테슬라로서는 캐즘의 직격탄을 맞아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은 100% 전동화 모델 전환 시기를 늦추는 대신 하이브리드 모델 강화 전략을 꺼내 들었다. 현대자동차는 2030년까지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만 판매하겠다던 기존 목표를 수정했다. 그 대신 2027년에 하이브리드가 적용된 제네시스 차량을 처음으로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도 전기차 판매 비중 50% 달성 시기를 기존 2025년에서 5년 늦췄다. 독일 포르쉐도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율 8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철회했다.
미국 포드는 내년 양산 목표로 개발하던 3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 개발 계획을 백지화하고 하이브리드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배터리 가격이 캐즘 종식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전기차 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이 아직도 비싸기 때문에 전기차 대중화가 더디다는 것이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학과 교수는 “지금은 전기차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결국 전기차 시대로 갈 것”이라며 “국내 업체들은 하이브리드를 강화해 캐즘을 피하면서도 전기차 경쟁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