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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포르쉐 카이엔 터보, “SUV의 역사 새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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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7-28 08:30:45업데이트 2023-05-10 21:46:39
포르쉐가 2003년 미국 시장에 카이엔(Cayenne)을 처음 선보였을 당시만 해도 성공을 의심하는 이들이 많았다. 흔히 포르쉐 하면 개구리가 웅크린 모습을 닮은 독특한 디자인의 고성능 스포츠카를 먼저 떠올리게 마련인데, 이런 회사에서 SUV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누리꾼들 사이에선 "포르쉐가 SUV를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 섞인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디자인과 관련된 논란이 컸다. 폭스바겐 투아렉, 아우디 Q7의 플랫폼을 공유한 탓에 포르쉐 고유의 디자인 DNA를 심기엔 다소 불편했고, 혹평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포르쉐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고유의 스포츠 감성만큼은 충분히 드러내려 노력했다.

포르쉐는 지난해 3월 열린 제네바모터쇼에서 3세대로 거듭난 카이엔을 선보였다.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엔진의 다양화를 통해 라인업을 구축했던 기존과 달리 디젤, 하이브리드 등의 가지치기 차종을 추가하며 수평 확장을 시도했다. 국내엔 같은 해 6월 국내 출시됐다. 휴가철을 앞둔 지금, 카이엔 가솔린 차종의 최상위 버전인 카이엔 터보를 시승했다.

▲스타일
구형 카이엔, 특히 1세대의 경우 너무나 투박한 탓에 거부감마저 들었다. 반면 신형은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 카이엔 고유의 멋으로 승화시켰다. 포르쉐 브랜드가 드러내는 역동성과 세련된 이미지를 충분히 발산함과 동시에 파나메라와 함께 다인승 다목적 차종들의 디자인을 통일, 패밀리룩을 구축했다.


카이엔 터보의 앞모습은 고성능 차종이라는 점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화려한 장식은 배제하고, 거대한 흡기구가 차의 성격을 표현한다. SUV의 강인함보다는 세련됨을 강조했다. 우락부락한 근육질 이미지가 아니다. 하지만 옆모습을 살펴보면 SUV의 활용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차를 아래위로 나눠 살펴보면 우선 아랫부분은 경사로의 원활한 진입과 탈출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고성능 차종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험로 주파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윗부분은 최대한 부드러운 곡선을 통해 공기저항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지붕에는 루프랙을 설치할 수도 있다. 아울러 21인치의 거대한 휠은 2쌍의 5개 스포크로 이뤄진 오픈 타입이어서 시각적으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키를 지닌 채 문 손잡이를 당기자 잠금장치가 풀린다.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실내는 단정하면서 화려하다. 특히 센터 페시아와 변속 레버 주변은 버튼이 많아 처음엔 다소 복잡하게 느껴진다. 물론 직관적이기 때문에 쉽게 적응된다.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여러 단계를 거칠 필요가 없다. 계기판은 여타 포르쉐와 마찬가지로 회전계가 중앙에 자리했다. 속도보다는 RPM(분당 엔진 회전 수)을 신경 쓰며 운전을 즐기라는 의미다.


카이엔은 SUV다. 오로지 달리기만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활용성에 주안점을 둔 포르쉐라고 봐야 한다. 폴딩 시트를 포함한 넉넉한 트렁크 공간, 각 좌석별로 나뉜 에어컨디셔닝 시스템, 라미네이트 글라스(두 개의 유리를 붙여 소음 차단을 위해 개발된 제품) 등은 고급스러움과 활용성 모두를 지향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행 & 승차감
카이엔 터보의 가장 큰 매력은 사운드다. 키를 돌려 시동을 걸자 V형 8기통 4.8ℓ 엔진에서 우렁찬 배기음이 뿜어나온다. 실내에선 듣기 좋은 정도지만 밖에선 존재감을 확실히 표현한다.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나는 그르렁대는 소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지나치게 낮지도, 높지도 않은 중간 톤의 음색이다. 중저음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부밍 사운드와 함께 진동도 느껴진다. 특히 뒷좌석에선 배기 사운드가 등 너머로 들리며 시트에 진동이 더해진다. 오랜 시간 앉아 있다면 사람에 따라 다소 피곤함을 호소할 수도 있다. 또한 선택품목인 베메스타의 하이엔드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 신나게 달리는 중에도 콘서트홀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외부와의 소음 차단이 잘 돼 음악을 듣기엔 최적의 장소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시속 100km를 유지했다. 8단 변속기와 토크가 높은 엔진이 조화를 이룬 덕에 2,000rpm이 채 되지 않는다. 부드럽다. 속도를 조금 더 높여 주행해도 부드러움이 일품이다. 동승자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면서 편안한 주행이 가능하다. 특히 앞차와의 간격을 스스로 조절하며 속도를 유지하는 ACC(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물론 사각지대에 다른 차가 있으면 알려주는 LCA(차선 변경 보조 장치)가 탑재돼 장거리 여행시에도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다.


카이엔 터보는 V8 4.8ℓ 엔진에 바이터보차저를 탑재해 500마력을 낸다. 터빈 부스트 압력계가 있어 압축된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토크는 2,250rpm에서 무려 71.43kg·m에 이른다. 중형차 석 대를 능가하는 힘이다. 성능이 좋다고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수준이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거침없이 치고 나간다. 큰 덩치가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들지 않는다. 무게는 구형에 비해 180kg 가벼워져 주행 성능은 물론 연료효율도 높였다. 물론 팁트로닉S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탓에 효율이 높아진 탓도 있다. 이전 세대 차종과 비교하면 23% 향상돼 휘발유 1ℓ로 6.7km 주행이 가능하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자 순식간에 앞으로 튕겨져 나간다. 오르막길에서 다른 차를 추월하는 것도 쉽다. 힘이 넘친다. 고성능 스포츠카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7초가 걸린다는 말이 실감된다. 주행 안정성 또한 탁월하다. PTM(포르쉐 트랙션 매니지먼트)이라는 통합 차체 제어 장치가 네 바퀴의 구동력과 제동력을 적절히 조절, 최상의 접지력을 유지할 수 있게 돕는다. 스포츠 모드를 활성화시키면 당장에라도 서킷을 찾아 달려야 할 것만 같이 변한다.

멋진 배기 사운드를 내며 고속주행이 가능한 카이엔 터보라 해도 기본적으로 SUV의 골격을 갖춘 탓에 오프로드에서도 거침없다. 주행 모드를 오프로드로 선택하면 앞바퀴 구동력이 향상되고 전자 가변 리어 디퍼런셜 기능이 함께 작동해 험난한 길에서도 충분한 견인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변한다. 노면이 고르지 못할 때에는 방향 전환과 엔진 힘을 전달하는 바퀴를 같게 해야 안정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행 상황에 맞게 높낮이가 조절되는 에어 서스펜션도 탑재돼 차고를 높여 안전하게 험로를 주파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제 운전할 때엔 탁월한 안정감이 일품이다. 포르쉐는 차체 하부 파손 방지를 위해 선택품목으로 바닥 보호 장비를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전자식 토우 바 시스템이 적용돼 버튼을 누르면 숨어있던 장치가 모습을 드러낸다. 최대 3,500kg의 트레일러까지 끌 수 있어 보트나 캠핑 캐러밴 등 다양한 레저 활동에도 손색없다.

▲총평
카이엔 터보는 럭셔리 하이퍼포먼스 SUV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이전 세대가 100m달리기 선수였다면 이번 세대는 2,000m 이상의 중장거리 종목에도 함께 출전하는 선수라 볼 수 있다.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며 질주하는 건 기본, 부드럽고 편안하기까지 하다. 험난한 오프로드에서도 거침없어 팔방미인이 따로 없다. 이런 매력이 알려진 탓일까. 결과적으로 보면 카이엔은 대성공이다. 현재 포르쉐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 볼륨모델이다. 같은 SUV라도 포르쉐가 만들면 다르다는 점을 충분히 어필한 탓에 놀라운 성적표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카이엔 터보를 타고 꽤 긴 거리를 주행했다. 소감은 ‘신기한 차’라는 한 마디로 표현이 가능하다. 멋진 사운드로 귀가 즐겁고, 고급스런 소재와 직관적 버튼으로 촉각을 자극한다. 축지법을 쓰는 듯 빠르게 내달리면서도 힘도 장사다. 이런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벅찬 감동으로 남지만 이를 느끼기에는 최소한 1억5,590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시승, 사진/ 박찬규 기자 star@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