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ev라운지 파트너인 아방가르드님의 블로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때는 2015년 2월, 어머니가 타시던 오래된 그랜저XG에 문제가 생겨 단골 카센터에 차를 맡겨보니 제너레이터와 배터리 교환으로 2~3시간 쯤 시간이 걸린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집에 갈 방법이 애매했던 저에게 카센터 사장님이 흔쾌히 자신의 차를 타고 잠깐 나갔다 오라고 키를 내 주셨는데, 그 차는 제가 카센터에 갈 때마다 눈여겨보던 오래된 현대 엑셀 세단.
제가 당시 타봤던 것은 1992년식 현대 엑셀입니다. 1989~1994년까지 생산된 엑셀 중에서 1991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후기형 엑셀 세단입니다. 외판 부식을 단 한군데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끔히 관리된 외관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한 차례 전체 재도색을 하면서 트렁크에 스티커형 로고가 유실된 것이 아쉽지만, 그 외엔 대부분 순정 상태를 너무 말끔히 유지하고 계셨습니다.
옛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돌출형 안테나..
샤크 안테나! 시간을 달리는 옵션!
....일 리는 없고, 내비게이션 GPS 외장안테나를 밖으로 빼면서 마감을 위해 붙이신듯 합니다.
실내입니다. 센터페시아 부분이 누렇게 보이는건 황변이 일어난게 아니고 실내가 너무 어두워서 스마트폰 플래시의 힘을 빌은 흔적입니다=3=3=3 실제 출퇴근 용도로 쓰시기에 블랙박스, 내비게이션, 확장 시거잭 등이 설치되어 있지만 그 외엔 대부분 순정 상태 그대로를 말끔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동승석 탑승자와의 친밀도를 강제 상승시켜주는 좁은 실내 너비는 엑셀과 최신 엑센트와의 전폭 차이가 100mm나 나는 것을 실감케 합니다.
13만km를 조금 넘긴 누적 주행거리. 요새는 트립모니터가 전부 디지털이라서, 저렇게 소숫점 단위까지 야금야금 돌아가던 재래식 계기반이 신기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당시 구입하실 때엔 실로 최상위 옵션이었다는 파워윈도우, 자동변속기도 탑재되어 있습니다. 요새는 쏘나타도 열선 시트에 2열 에어벤트가 기본인 시대라지만 당시에는 에어컨도 선택옵션이었죠. 뻥버튼이 상당히 많지만, 그래도 편의장비들은 충분히 갖춰져 있어 현시대 도로를 달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파워윈도우 조작계가 기어레버 앞쪽에 전부 몰려있기에 도어트림 쪽에는 도어락 스위치만 빼고는 아무 버튼도 없습니다.
소싯적에 엑셀을 가족차로 타봤던 친구에게 물어물어 찾아낸 비상등 스위치. 핸들 뒤에 숨어있었네요.
시트백 서류수납공간, 암레스트, 컵홀더 등 요즘 차에서 상상할 수 있는 편의 장비도 없고 공간도 최신 경차들보다 좁지만, 시트만큼은 트임이나 찢김 없이 새것같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보여드리고 싶은데 정말로 일상적으로 쓰시는 차이기에 이런저런 개인 물건들이 많아서 사진을 자세히 찍지는 못했습니다.
사장님 DIY 품목으로 LED 실내등, 내비게이션 외장 안테나, 센터콘솔 암레스트 겸 사물함 등이 있습니다.
조금 세게 닫으면 떨어져나가지는 않을련지 걱정되는 얇다란 도어들. 흔한 고무 실링도 없이 생 철판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서도 녹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자차 관리에 대한 사장님의 애정에 다시 한번 머리가 절로 숙여집니다.
1.5리터 MPI 엔진. 요새는 직분사가 흔하지만, 당시 엑셀이 달고 나온 전자제어 연료 다중분사 엔진은 나름 첨단 기술이었습니다. 먼지가 앉고 기름 흘린 흔적이 있지만 역시나 전체적으로 탈 없이 깔끔히 관리된 모습니다.
출고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알로이 휠.
정자동에서 집까지 7km 고속화도로 및 시내 구간에서 운전대를 잡아보았습니다. 정차 시 핸들을 통해 상당한 진동이 전해져 오고, 자동변속기 기어레버는 너무 헐겁고, 대시보드에서 간헐적으로 상당히 큰 잡소리가 전해져오는 등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지만, 하체에서는 삐걱거림이 없고, 파워스티어링도 믿음직했고, 주변에 너무 느린 초보운전자의 차도 거뜬히 추월해내며 씩씩하게 달려주었습니다. 사장님 자차라서 매우 얌전히 운전한 것이 전부입니다만, 제 나이보다 조금 어린 수준의 이런 차는 그저 탈 없이 달려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겠죠.
수리가 완료된 차를 저희 집까지 끌고오신 사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엑셀은 1992년 당시 신차 최고급형으로 구입하셨으며, 댁에서 카센터까지 출퇴근 용도로만 쓰고 있고, 멀리 나갈때엔 자녀분들의 차를 타고 같이 이동하기에 누적 주행거리도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장도 종종 있었지만 사장님이 정비를 업으로 하고 계셔서 그때그때 철저한 관리와 예방정비가 가능했기에 당시 기준으로 23년이 흘러서도 상태가 새차 수준으로 좋았던 것이었습니다. 카센터에 들르는 손님들 중에 안목이 있으신 분들은 시세의 10배 이상을 쳐주겠다며 엑셀을 넘겨달라고 하지만 사장님은 늘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카센터를 차리고 자녀들을 출가시킨 오늘날까지 인생의 굴곡을 함께한 자랑스러운 동반자인 만큼, 앞으로도 쭉 말끔하게 유지해나가실 테죠.
유럽이나 미국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정말 부러웠던 것은 올드카 문화입니다. 20세기 말 급속 경제성장을 거치고 자동차산업 발전의 역사도 짧은 우리나라는 애차를 자가관리, 보존하는 문화가 아직도 낯설고, 몇 안 남은 올드카들도 주인 없이 방치, 폐차되거나 해외에 중고 수출되어버리기 일쑤입니다. 물론 올드카도 유지/보수에 만만치 않은 금전과 노력이 들어가는지라 "있는 사람들의 취미"인 특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부양가족이 있는 가장 입장에서 올드카를 메인카로 쓰기엔 취약한 안전성도 찝찝하겠고요. 하지만 긴 세월동안 차주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묵묵히 달려준 자동차를 애정으로 보듬어 함께 늙어가는 것, 정말 멋지지 않나요? 카센터 사장님처럼 애차를 일생의 동반자처럼 애지중지하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간다면, 우리나라의 도로 모습도 훈훈하고 아름다워질 것 같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어둑적적해서 할 수 없이 주차장에서만 부랴부랴 찍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공터에 세우고 자세히 찍어두지 못해 너무 아쉽네요. 요즘 이런 차들의 개체수가 점점 사라져서 이젠 사진으로 담고 싶어도 담을 수 없는 존재인데 말이죠..
저 때의 인연으로 아반떼AD 1.6 탈 동안은 저 카센터만 다녔었는데, 결혼하고 거처도 옮기고 하는동안 한참 못 들러봤네요. 과잉정비 없이 합리적이고 정확한 진단에, 친절하게 잘 봐주셨던 좋은 기억만 남아 있었는데, 지금도 다행히 상호 안 바뀌고 영업을 계속 하고 계시네요. 이제 전기차를 타느라 일반 카센터를 갈 일이 거의 없지만, 그 엑셀이 아직도 잘 남아있는지, 사장님은 건강히 잘 계신지 한번 뵈러 가보고싶다는 생각과 함께 글을 마무리해봅니다.
출처 : 아방가르드(avantgarde3)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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