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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테슬라여! 전기차를 싸게 하소서…전기차 대중화 시대와 디자인[이건혁의 브레이크뉴스]

이건혁 기자
입력 2023-04-22 09:00:00업데이트 2023-05-08 17:45:08
세계 모빌리티 시장이 숨 막힐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흐름에 몸을 맡기기 전, 쉬는 시간(브레이크 타임)에 읽을 수 있는 뉴스를 전해봅니다.

이번 주는 미국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에 대한 소식이 유독 많은 한 주였습니다. 먼저 한국자동차연구원에서 나온 보고서 한 장이 기자와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죠. 제목은 ‘전기차 가격경쟁 시대의 시작’입니다.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해보면, 전기차의 가격 인하가 본격화된다는 겁니다.

테슬라의 중형 세단 모델3. 테슬라 제공테슬라의 중형 세단 모델3. 테슬라 제공
아, 이 얼마나 듣기 좋은 말입니까.
사실 전기차 구입을 망설이는 많은 소비자가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가격입니다. 완성차 업체 홈페이지에 소개된, 보조금이 반영되지 않은 전기차 가격은 아직 소비자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격대입니다. 마음속으로 ‘이 돈이면 차라리…’를 외치며 내연기관차나 하이브리드차를 둘러보게 만들죠. 그나마 정부 보조금 덕분에 전기차는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완성차 판매량 중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9.9%였습니다.

세계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바로 여기서 전기차 판매량 세계 1위 테슬라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테슬라는 연초부터 인기 전기차인 모델3, 모델Y 등의 가격을 여러 차례 인하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올해만 벌써 6차례 가격을 내렸죠. 재고가 많아졌다는 게 이유입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테슬라 제공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테슬라 제공

시장은 성장하는데, 재고가 많아졌다? 테슬라 입장에서 보면, 경쟁사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자사의 시장 장악력이 줄어들고 있으며, 이 추세를 쉽게 뒤집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합니다. 시장조사업체 S&P 글로벌 모빌리티에 따르면 테슬라의 북미 시장 점유율은 2020년 79%에서 2021년 70.5%, 2022년 63.5%로 내려왔죠. 2025년에는 20% 또는 그 아래로 떨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북미 전기차 시장 2위에 오른 현대자동차를 향해 “꽤 잘하고 있다”고 말했던 여유가 없어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테슬라 가격은 얼마나 내렸을까요. 가격 변동이 심해 국내에서 ‘횟집 시가 같다’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내렸으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테슬라 모델3 후륜구동 모델의 국내 가격을 볼까요.

2021년 10월
5859만
12월
6159만
2022년 3월
6469만
5월
6699만
6월
7034만
2023년 1월
6434만
2월
5999만


아직 국내 테슬라 가격은 미국 등 다른 국가에 비해 가격 하락 횟수가 적기는 하지만, 모델3 후륜구동 가격을 기준으로 보면 2021년 수준으로 내려왔습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고점을 찍었던 지난해 7월 대비로는 1000만 원 이상 싸졌죠.
자동차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치킨 게임’을 시작했다고 평가합니다. 경쟁사들이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가격을 낮출 거라고 예상합니다.

테슬라가 적극적으로 가격을 내릴 수 있는 비결은 중 하나는 디자인입니다. 모델3를 보죠. 2017년 시장에 등장한 후 7년 넘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테슬라 모델3의 외형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7년 간 소위 ‘부분 변경’으로 불리는 디자인 변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통상 자동차 업계에서 7년은 완전 변경(풀체인지) 주기, 3~4년은 부분 변경(페이스리프트) 주기로 통용되죠. 물론 테슬라 모델3는 부분 변경(테슬라는 이를 리프레시라고 부릅니다)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요 자동차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에 따르면 모델3 부분변경 모델은 전조등(헤드라이트) 디자인에 변화를 준 것으로 파악되고 있죠. 누군가는 ‘크게 변했다’라고 환영할만하고, 누군가는 ‘뭐가 변했지’라고 의아해할 것입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솔직히 이 정도 변화를 두고 ‘페이스리프트’라고 할 수 있는 건 테슬라뿐이다”며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 테슬라 소비자들의 충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합니다. 최근 출시된 현대차 중형 세단 ‘쏘나타 디 엣지’가 기존 8세대 모델을 사실상 갈아엎다시피 해서 출시된 것을 생각해보면 비교가 많이 될 겁니다.

이는 소품종 대량생산에 특화됐으며 이미 충분한 시장 경쟁력을 갖춘 테슬라만이 취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디자인은 공기 역학에 초점을 맞춰 단순한 형태를 유지하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자동차를 최신 상태로 유지하는 거죠. 자동차업계에서는 부러워할만한 부분입니다. 자동차업계 고위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차 디자인 변화는 엄청난 인력과 비용이 소비되는 일입니다. 스케치, 콘셉트카(개발 방향성을 담은 시제차), 양산에 이르기까지 수정과 수정이 끊이질 않죠. 테슬라는 기존 모델 형태를 건드리지 않음으로써 비용 절감, 생산 라인 수정, 디자인 변화가 가져올 시장 반응에 대한 불확실성 등의 단점을 모두 제거해버린 겁니다.”

테슬라 로고. 테슬라 제공테슬라 로고. 테슬라 제공

당장 전기차 스타트업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미국의 리비안, 루시드 등은 테슬라발(發) 가격 인하 경쟁을 버텨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생산량은 목표를 밑돌고 있는데,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빠르게 제품을 내놓으며 시장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격 인하 폭을 넓혀 대응하기에는 자금 부담이 너무 크죠. 저금리 기조로 돈이 넘쳐나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와 달리, 금리가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고 경기 침체 우려까지 확산하는 만큼 투자금을 더 확보하기는 어려운 상황. 이 때문에 제2의 테슬라를 꿈꿨던 전기차 스타트업들의 미래는 더없이 암울해졌습니다.

결국 테슬라가 촉발한 가격 인하 전쟁은 고래 싸움으로 전개될 겁니다. 완성차 업체들의 대응 전략은 크게 두 가지. ‘기존 모델의 가격을 낮춘다’와 ‘저가형 모델을 개발한다’일 겁니다.

테슬라처럼 현재 판매 중인 모델의 가격을 낮추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현대차 아이오닉5나 기아 EV6 같은 전기차에서 중요한 기능을 다 제거하고, 배터리도 저가형으로 대체하는 등 상품성을 낮추는 선택을 하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테슬라와의 경쟁에서 상품성으로 비교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선택한 기능들입니다. 이를 포기하는 순간, 소비자들은 ‘같은 값이면 테슬라’라는 생각이 굳어질 수도 있습니다. 테슬라의 가격 인하 정책으로 올해 1분기(1~3월) 판매량은 42만2875대로 지난해 4분기(40만5278대)보다 늘어나는 효과를 봤습니다. 여전히 테슬라는 세계 1위 전기차 제조사니까요.

테슬라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Y. 테슬라 제공테슬라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Y. 테슬라 제공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저가형 전기차 개발 전쟁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할인이 많이 된 구형 테슬라 vs 가성비 높은 신형 전기차’ 구도로 바꿔놓겠다는 완성차 업체들의 전략도 숨어 있습니다. 현재는 테슬라가 시작한 가격 전쟁 탓에 역설적으로 가격이 전기차 선택의 핵심으로 부각됐지만, 앞으로 테슬라의 약점인 오래된 디자인(물론 디자인 변화를 거부하는 소비자도 있습니다)을 부각해 디자인 싸움으로 전선을 옮기겠다는 거죠. 신차 디자인 인력과 노하우가 많은 현대차·기아, 미국 GM과 포드, 독일 폭스바겐, 프랑스 르노 등이 도전장을 내민 거죠. 테슬라가 개발 중인 저가형 전기차 모델2가 나오기 전에 이 시장을 잡겠다는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우면서도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격 인하는 바람직하지만, 자동차 기능 저하까지 동반되는 건 원하지 않을 겁니다. 가격은 낮아져도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400㎞에 미치지 않는다던가, 자율주행이나 커넥티드카 관련 기능이 빠진다던가, 디자인이 이상해진다던가….

테슬라가 시작한 가격 전쟁의 끝은 어디일까요. 가격 할인을 넘어 테슬라다운 ‘가격 혁신’이 완성될지, 진정 소비자들이 바라는 보급형 전기차 시대가 열릴지, 아니면 치킨 게임의 끝에 살아남을 소수 업체에 의해 가격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일입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