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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테슬라 앞마당서 암벽 오른 ‘그랜드체로키 4xe’… 지프 프리미엄 전동화 서막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입력 2022-05-30 10:05:00업데이트 2023-05-09 11:37:27
지프 신형 그랜드체로키는 지난 1992년부터 시작된 그랜드체로키 30여년 역사상 가장 특별한 모델로 꼽을 수 있다. 신형 그랜드체로키는 5세대로 거듭나면서 그동안 담당해온 브랜드 플래그십(기함) 타이틀을 신형 왜고니어(Wagoneer)에 내줬다.

신분은 달라졌지만 입지는 더욱 견고해졌다. 3열 롱바디 모델인 그랜드체로키 L을 처음 추가하고 전동화 모델인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버전까지 내놨다. 기본형인 5인승과 3열 롱바디, PHEV 등 라인업이 크게 3종으로 확장됐다.

또한 FCA와 PSA가 합병한 스텔란티스 출범에 맞춰 풀체인지를 거쳤다. 지프 브랜드 80주년(2021년)을 기념하는 의미까지 담았다. 특히 작년 출범한 스텔란티스가 전동화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그랜드체로키도 그룹 전동화 전략에 포함됐다. 지프는 전기차에 앞서 PHEV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순수전기차를 속속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시기적으로 늦은 것처럼 보이지만 PHEV를 앞세워 차근차근 전동화 브랜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아이코닉 모델인 랭글러 4xe(포바이이)와 콤팩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레니게이드 4xe, 컴패스 4xe가 각각 미국과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업계에서는 오프로드 성능을 강조한 ‘SUV 군단’ 특성에 적합한 전동화 전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프 랭글러 4xe는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기모드 오프로드 주행을 선보였다. 엔진소리 없이 고요하게 자연 지형물을 극복하는 주행을 통해 전동화 시대 오프로더 방향성을 보여줬다.

지프 본고장 미국에서 만난 그랜드체로키 4xe는 지프 뿐 아니라 스텔란티스그룹 전동화를 더욱 확장시킬 모델로 볼 수 있다. 이번 5세대 그랜드체로키가 어느 때보다 특별한 모델인 이유다. 국내에서는 지프가 두 번째로 선보일 전동화 모델이다.

그랜드체로키 4xe를 만난 곳은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텍사스는 최근 미국인들로부터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지역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날씨와 환경이 비슷한 텍사스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랜드체로키 4xe 글로벌 시승 행사 장소로 텍사스 오스틴 일원을 선정한 이유를 물었다. 지프 측은 사막지역에서 오프로드 주행에 최적화된 장소를 발견했다고 답했다. 표면적으로는 텍사스의 광활한 사막지역을 신차 공개 장소로 낙점했다. 하지만 텍사스 주도(州都) 오스틴 일원에는 테슬라 신규 공장이 있다. 세계 최대 규모 자동차 생산 공장이면서 가장 큰 배터리 공장으로 조성된 ‘기가 텍사스’가 2022년 4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향후 픽업트럭 모델인 사이버트럭과 대형 전기 상용차 세미가 생산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동부지역에 공급되는 모델3와 모델Y도 이곳에서 생산된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전격적으로 전동화 전환을 추진하는 스텔란티스와 지프가 오스틴을 글로벌 행사장으로 선정한 숨은 의도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글로벌 전기차 강자인 테슬라 앞마당에서 묵묵히 전동화 걸음을 내딛는 지프의 도전이 흥미롭다.
○ 프리미엄 디자인 방향성 제시… 지프, ‘전동화·고급화’ 병행
브랜드 4번째 PHEV SUV인 그랜드체로키 4xe는 그룹 친환경 비전 ‘제로 에미션 프리덤(Zero Emission Freedom)’ 확장과 지프 고급화를 동시에 이끄는 모델로 볼 수 있다. 먼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달라진 외관을 통해 브랜드 고급화 전략을 직감할 수 있다.
전체적인 스타일은 먼저 선보인 그랜드체로키 L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길이와 너비가 각각 4910mm, 2150mm다. 전폭은 동일하지만 전장이 280mm 짧아진 덕분에 조금 더 스포티한 느낌이다. 그랜드체로키 L은 웅장한 이미지가 강해 이전 세대 모델과 완전히 다른 모델처럼 보이지만 5인승 그랜드체로키 4xe는 기존 그랜드체로키를 떠올리는 특유의 탄탄한 비율을 갖췄다. 날렵하게 다듬어진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은 그랜드체로키 고급화의 ‘백미(白眉)’다. 특히 상어의 코를 형상화한 ‘샤크노즈’ 그릴은 고급스러우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극대화한다. 샤크노즈와 조화를 이루는 7개 슬롯 그릴 구성은 새로운 브랜드 헤리티지를 보여준다. 7 슬롯 그릴 안쪽에는 다양한 첨단 장비들이 감춰져있다. 주행 상황에 따라 열리거나 닫히는 액티브셔터그릴을 비롯해 오프로드 주행 편의를 위한 360도 카메라(전면 하단), 적외선 나이트비전카메라, 레이더와 각종 센서 등이 7 슬롯 그릴 뒤에 포진했다. 보닛을 열면 엔진부가 최대한 뒤로 밀려있는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렉 호웰(Greg Howell) 지프 외관 디자인 총괄은 “개인적으로 가장 멋진 부분이 전면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며 “공기역학을 고려한 액티브셔터그릴부터 각종 센서 등 첨단 장치들이 그릴에 몰려있지만 디자인 완성도를 위해 가급적 숨기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그릴은 장식 소재에 따라 역동적인 느낌과 세련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트림은 기본형인 오버랜드와 고급 버전 써밋리저브, 트레일호크 등 3종으로 구성됐다. 트림에 따라 그릴 디자인이 다르다. 그랜드체로키 4xe 전용 견인고리는 블루 컬러 포인트가 더해진다.
뒤로 갈수록 낮아지는 루프는 실내 공간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공기역학 성능을 극대화해 설계했다고 한다. 후면 D필러는 루프가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플로팅루프 스타일이 적용됐고 블랙루프로 이뤄진 투톤 컬러를 고를 수 있다. 지프는 새로운 블랙루프 디자인을 이번 그랜드체로키 비율을 완성하는 핵심요소로 꼽았다. 그렉 호웰은 “블랙루프는 가로와 세로 비율에 포인트를 줘 차를 훨씬 날씬하고 역동적으로 보이게 한다”며 “단순한 디테일이지만 시각적인 비율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자세히 보면 움푹 들어간 측면 도어 디자인은 이전 세대 그랜드체로키를 연상시킨다. 볼륨감이 강조된 전·후면 휀더와 대조를 이뤄 근육질을 연상시키는 라인을 구현한다. 테일램프는 날렵하게 디자인돼 전면 헤드램프와 조화를 이룬다. 후면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구성이지만 웅장한 전면과 대조돼 다소 밋밋하게 보일 수 있다.

트레일호크 트림은 차체 하단에 플라스틱을 더했다. 오프로드 주행 시 차체 손상을 고려한 사양이다. 전면 범퍼 하단은 대각선으로 깎았다. 오르막길 경사각을 극대화한 설계다.
○ ‘첨단 디지털 구성’ 실내… 지프 고급화 주도
실내 변화는 완전히 달라진 외관보다 크게 느껴진다. 브랜드 고급화를 주도하는 핵심요소다. 국내에 먼저 출시된 그랜드체로키 L을 통해 고급스러워진 소재와 실내 구성을 확인했지만 이번 그랜드체로키 4xe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조수석 탑승자를 위한 10.25인치 인터렉티브 디스플레이가 더해져 최신 디지털 환경을 완성했다. 탑승자는 조수석 모니터를 활용해 내비게이션과 각종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확인하거나 조작할 수 있다. 해당 기능은 향후 그랜드체로키 L 등에도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10.1인치 센터디스플레이와 계기반 디스플레이는 그랜드체로키 L과 동일하다. 센터디스플레이 상단에 배치된 버튼(비상등, 주차센서, 차선유지보조 기능 등)과 하단 공조기 버튼은 물리적인 버튼으로 만들어져 직관적인 조작이 가능하다.
대시보드 내 각종 디지털 장치들은 우드 트림과 금속, 가죽 소재로 감싸 고급스러운 느낌을 극대화한다. 디스플레이와 센터페시아에 적용된 하이그로시 소재는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지문이 잘 남는다. 변속기 조작은 다이얼 방식으로 이뤄진다. 기어노브에 익숙한 사람도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조작감도 우수하다. 기어노브 좌측과 우측에는 각각 주행모드와 서스펜션 높이 설정(쿼드라 리프트) 버튼이 배치됐다. 주행환경에 따라 직관적인 조작이 가능하다. 시트와 스티어링 휠 가죽 소재 촉감도 고급스럽다. 시트는 좌우 측면 퀼팅 장식이 탄탄하면서 꼼꼼하게 마감됐다. 여기에 그랜드체로키 최초로 주·야간 설정이 가능한 고급 맞춤 LED 조명이 더해졌다. 다양한 조명등(엠비언트 라이트) 컬러로 분위기를 취향에 맞게 설정할 수 있다.
미국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매킨토시(McIntosh)’ 사운드시스템은 19개 스피커를 통해 원음에 가까운 음질을 구현한다. 음질 뿐 아니라 도어 안쪽 하단 스피커와 LED 로고, 대시보드 양쪽 모서리에 있는 돌출형 트위터는 디자인 측면에서도 만족감이 높다. 센터디스플레이를 통해 매킨토시 파워엠프를 상징하는 파란색 레벨 표시창을 구현할 수도 있다. 음량과 음질에 따라 계기반이 움직인다. 아날로그 감성을 디지털로 완벽하게 구현한 요소다. 이밖에 스마트폰 무선충전 시스템과 USB(C-타입 포함), HDMI, 12볼트 DC 단자, 뒷좌석 10.1인치 엔터테인먼트 모니터 등 각종 편의사양이 마련됐다.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오토 등 스마트폰 연동 기능도 충실하다.

트렁크 기본 용량은 신형 그랜드체로키 4x4와 동일하다. 4xe 모델은 전기모터와 배터리 등 전기 구동계가 탑재되지만 트렁크 공간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뒷좌석을 접으면 최대 2005리터(북미 기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배터리는 뒷좌석 아래에 장착된다.
○ 부드럽고 쾌적한 승차감… 미리 경험한 지프 전기차 ‘기대감↑’
파워트레인은 2.0리터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린다.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270마력, 최대토크 40.8kmg.m의 성능을 발휘한다. 여기에 전동화 장치인 전기모터 2개와 삼성SDI가 공급한 400볼트(V) 리튬이온배터리가 더해져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완성한다. 배터리 용량은 17kWh다. 합산 최고출력은 375마력, 최대토크는 64.0kg.m다. 랭글러 4xe처럼 엔진을 사용하지 않고 모터와 배터리로만 구동하는 전기모드 주행이 가능하다. 1회 충전으로 최대 40km가량 주행할 수 있다.
오스틴 도심에서 존스타운 인근 휴게소까지 약 40km 거리를 전기모드(일렉트릭)로 주행했다. 전동화 주행모드(E-셀렉)는 운전대 좌측 하단에 마련된 버튼 조작을 통해 설정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HYBRID)와 일렉트릭(ELECTRIC), e-세이브(e-SAVE) 등 3개 버튼이 있다. 물리적인 버튼으로 구성돼 직관적인 조작이 가능하다. 내연기관을 사용하지 않고 전기차처럼 주행하려면 일렉트릭 버튼을 누르면 된다.

전기모드 그랜드체로키는 그동안 지프 브랜드에서 경험하기 어려웠던 쾌적한 주행감각을 선사한다. 어댑티브크루즈컨트롤과 차선유지보조 기능을 조합한 반자율주행도 가능하다. 시인성이 우수한 센터디스플레이와 계기반 디스플레이, 잘 정돈된 디스플레이 그래픽 덕분에 운전이 더욱 쾌적하게 느껴진다. 승차감은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깔끔하다. 그러면서 요철이나 울퉁불퉁한 도로에서는 묵직하게 하체를 받쳐준다.
미국 대형 SUV 특유의 출렁거림은 느끼지 못했다. 전기모드 그랜드체로키를 타면서 지프가 향후 선보일 순수전기차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기도 했다. 급격하게 차선을 변경할 때 약간의 흔들림이 있지만 덩치를 고려하면 평이한 수준이다. 코너 구간도 큰 쏠림 없이 안정적으로 돌아나간다. 전기모드로 시속 100km 넘는 주행도 가능하다. 전기모드는 땅이 넓은 미국보다 국내 도심 주행에 더욱 적합해 보인다. 출퇴근 용도로 전기모드를 사용하고 충전만 제때 한다면 평일에는 기름을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장거리 운행 시에는 휘발유와 전기를 사용해 최대 750km 이상 주행이 가능하다.
약 40km를 전기모드로 주행하고 배터리가 5%가량 남았다. 연비에 초점을 맞춘 주행이 아니었던 점을 감안하면 배터리 효율이 꽤 우수하다. 에너지 흐름은 센터디스플레이를 통해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엔진과 배터리 에너지 사용량, 공조기 사용에 따른 에너지 소모량 등을 직관적으로 표시해준다.

배터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번에는 약 50km 구간에서 주행모드를 e-세이브 모드로 설정했다. 가솔린 엔진을 사용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방식이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유커넥트5(Uconnect 5) 앱을 통해 주행모드 성격을 배터리 절약이나 배터리 충전으로 설정할 수 있다. 일반도로와 비포장도로 구간 50km를 주행하면서 배터리가 15%가량 충전됐다. 충전효율이 생각보다 우수하다. e-세이브 모드를 자주 사용할 것 같다.
그랜드체로키 4xe에 탑재된 2.0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 조합은 랭글러 4xe와 동일한 구성이다. 국내 출시된 그랜드체로키 L에는 3.6리터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이 얹힌다. 묵직한 3.6 자연흡기 엔진을 경험해본 탓에 그랜드체로키 4xe에 장착된 2.0 터보 엔진이 다소 가볍게 느껴진다.

전반적인 엔진소리는 일반적인 수준이지만 저단에서 가속페달을 세게 밟으면 2.0리터 가솔린 엔진 특유의 가벼운 회전소리가 실내로 유입되기도 한다. 덩치가 크고 무겁기 때문인지 2.0 엔진이 다운사이징으로 느껴진다. 랭글러 4xe에 장착된 2.0 엔진과는 다른 느낌이다. 랭글러의 경우 오프로더를 지향하는 성격 탓에 작은 엔진소음에 대해 관대하게 받아들여졌다. 오히려 전기모터와 배터리가 탑재되면서 전반적인 주행 완성도가 향상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랜드체로키 2.0 엔진은 대형 SUV 특유의 묵직한 고배기량 질감에 익숙한 소비자에게 다소 낯선 느낌일 수 있다. 크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지만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출발 초기에 전기모드로 가속하고 항속구간에서 가솔린 엔진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전동화 시스템이 대형 SUV에 탑재된 낮은 배기량 엔진의 단점을 보완하는 셈이다.
○ 돌산도 가뿐… ‘오프로더 전기차’ 미리보기
지프를 상징하는 오프로드 코스는 오스틴에서 200km가량 떨어진 ‘잉크스목장(Inks Ranch)’에 마련됐다. 개인 사유지를 빌렸다고 한다. 목장이라고 해서 대관령 양떼목장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텍사스 목장은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경계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남다르다. 푸른 잔디로 뒤덮인 녹색 목장도 아니다. 황토 빛 사막 황무지에 가깝다. 저 멀리 빌딩만한 돌덩이도 보인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씩 ‘북미형’ 소가 보이기도 한다. 소 대부분이 까맣다. 목장에서 키우는 소인지 사막에서 살고 있는 야생 소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소 몇 마리가 길을 막기도 했다.
멀리서 봤던 빌딩만한 돌덩이에 도착했다. 돌덩이(돌산) 꼭대기에 신형 그랜드체로키 3대가 전시돼 있었다. 지프만 시도할 수 있는 전시다. 돌산 밑에는 사진으로만 봤던 태양광 전기 충전소가 설치됐다. 돌산 꼭대기 지프와 첨단 시설에서 충전 중인 지프가 조합돼 독특한 광경을 연출한다. 지프가 추구하는 오프로드와 전동화 방향성이 담긴 모습이다.

오프로드 코스는 비포장도로를 기본으로 언덕과 자갈길, 도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물웅덩이, 암벽 등으로 구성됐다.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을 검증하는 ‘트레일레이티드(Trail Rated)’ 인증 코스를 함축한 구성이다. 그랜드체로키도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트레일레이티드 인증을 받았다. 다만 그랜드체로키 특성을 감안해 극단적인 오프로드 코스로 이뤄진 ‘루비콘 트레일’보다는 평탄한 코스를 준비했다고 한다. 오프로드 코스 주행시간은 30분이다. 곳곳에 안전요원들이 배치돼 안전하게 코스를 극복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투입 모델은 오프로드 전용 사양이 더해진 그랜드체로키 4xe 트레일호크 트림이다. 하체 손상을 대비해 플라스틱 소재 범퍼와 바디키트가 장착됐고 전용 뱃지와 데칼, 오프로드 전용 타이어와 18인치 휠이 더해졌다. 오버랜드나 써밋리저브 트림보다 역동적인 외관 디자인이 특징이다. 파워트레인과 기본적인 오프로드 성능 제원은 오버랜드, 써밋리저브와 동일하지만 전용 오프로드 기능으로 스웨이바(Sway Bar) 분리 장치가 추가됐다. 쉽게 설명하면 스웨이바를 분리해 좌우 바퀴 서스펜션이 제각각 늘어나거나 당겨질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다. 울퉁불퉁한 구간에서 좌우 바퀴 접지력을 극대화해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비포장도로 언덕을 내려와 평탄한 구간을 지난 후 안전요원이 차를 멈춰 세웠다. 본격적으로 코스에 진입하기 전 그랜드체로키 4xe 트레일호크의 오프로드 세팅을 점검했다. 쿼드라 리프트 에어 서스펜션을 최대로 높이고 버튼을 눌러 스웨이바를 분리하도록 했다. 강력한 토크가 꾸준히 바퀴에 전달될 수 있도록 저단 사륜구동(4WD Low) 모드를 활성화하고 주행모드를 락모드로 설정했다. 주행모드는 락(rock, 암석)과 샌드·머드(sand·mud, 모래·진흙), 스노우, 오토, 스포츠 등 5가지를 고를 수 있다. 온로드 주행을 고려한 스포츠모드도 있다. E-셀렉 전동화 모드는 일렉트릭(전기모드)으로 설정했다. 랭글러 4xe에 이어 전기모드 오프로드 주행은 이번이 두 번째다. 자연 속에서 엔진소리 없이 고요하게 차를 운전한다는 게 여전히 이색적이다. 타이어가 흙이나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 차가 물길을 헤쳐 나가는 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자연을 보다 가깝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전동화 오프로더의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낮 시간이었지만 계기반은 적외선 나이트비전 화면으로 설정해봤다.

키가 껑충해진 그랜드체로키 4xe 트레일호크가 오프로드 주행 준비를 마쳤다. 최저지상고는 287mm. 타이어와 휠하우스 사이 공간이 눈에 띄게 넓어졌다. 차에 타거나 내릴 때도 체감이 될 정도의 높이 변화다.
울퉁불퉁한 언덕을 넘어 물웅덩이 코스에 진입했다. 물이 많지 않고 물웅덩이가 길지 않아 도강 성능을 체험하기는 어려웠다. 미끄럽고 험한 진흙 길을 일반도로처럼 아무렇지 않게 빠져나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신형 그랜드체로키에는 엔진이나 전기모터 구동력을 전륜이나 후륜으로 최대 100%까지 배분할 수 있는 ‘쿼드라 트랙’ 기술이 적용됐다. 좌우 구동력은 차동제한장치(LSD, Limited Slip Differential)인 ‘쿼드라 드라이브’ 시스템이 제어한다. 한쪽 또는 일부 바퀴가 허공에 뜬 상황에서도 지면에 닿은 다른 바퀴에 구동력을 몰아줘 장애물을 극복하도록 돕는 기능이다. 전기모드에서도 지프가 자랑하는 오프로드 기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20도 넘는 경사 구간도 가뿐하게 올라섰다. 특히 길이 아닌 바위 구간을 평범한 오르막길처럼 극복했다. 묵직한 저단 구동력과 물웅덩이를 지나면서 젖은 타이어가 바위를 꽉 움켜쥐고 있는 느낌이 인상적이다. 급격한 경사에서 차를 멈춰도 뒤로 밀리거나 미끄러지지 않는다. 길이 아닌 바위 위에서 이렇게 안정적으로 주행할 수 있는 차는 흔치않다. 돌산 위에 신형 그랜드체로키를 전시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오프로드 코스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현대 포터나 스타렉스 같은 차들이 먼저 올라와 있어 김이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바위 구간은 한 눈에 봐도 오프로드 성능을 입증한 차만 극복할 수 있는 코스로 이뤄졌다.
내리막길 경사는 30도를 넘나들었다. 뒤 따라오던 차는 서스펜션을 최대로 올린 상태에서도 전면 범퍼 하단이 찍힐 정도로 길이 험했다. 하지만 안전요원 유도에 따라 안전하게 바위 구간을 통과했다. 신형 그랜드체로키 4xe는 진입각이 최고 36도에 달한다. 웬만한 스키장 최상급 코스 최고 경사에 해당한다. 차가 다닐 수 있는 오르막이나 내리막 도로 중에 신형 그랜드체로키가 가지 못하는 도로는 없는 셈이다. 이탈각은 30도, 램프각(떨어지지 않고 주행할 수 있는 가장 가파른 각도)은 24도다. 도강은 최고 수심 660mm까지 주행할 수 있다. 견인 가능한 최고중량은 3200kg 이상이라고 한다.
이번 오프로드 투입 차종은 트레일호크 모델이지만 일부 패키지와 기능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양과 제원이 오버랜드, 써밋리저브와 동일하다. 트레일호크가 국내 주력 모델로 출시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번 시승을 통해 그랜드체로키 4xe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프 엘스워스(Jeff Ellsworth) 지프 글로벌 제품·마케팅 총괄은 “지프 전동화 비전인 제로 에미션 프리덤은 쉽게 사그라드는 유행이 아니라 브랜드 핵심 가치인 자유와 모험, 정통성, 열정을 증폭시킨다”며 “지프 전동화의 시작인 ‘4xe’ 기술이 집약된 그랜드체로키 4xe가 미래 비전을 구현하는데 핵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텍사스=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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