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양재 사옥에서는 정기 주주총회가 열렸습니다. 이사회 의장인 장재훈 현대차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분위기로 진행됐습니다. 주주를 대상으로 ‘현대차 디자인 헤리티지 및 디자인 방향성’ 설명회에서는 현대디자인센터장 이상엽 부사장이 나서 현대차의 헤리티지를 주주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주총장 입구에는 1974년 현대차의 콘셉트카(개발 방향을 담은 시제차)였던 ‘포니 쿠페’의 정신과 디자인을 계승한 수소 하이브리드 기반 롤링랩(움직이는 연구소) ‘N Vision(엔 비전) 74’가 전시돼 주주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차의 미래를 이야기 하는 자리에 한 명이 안 보입니다.
바로 현대차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죠. 현대차의 대표이사로는 장재훈 사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 회장 역시 현대차의 사내이사인데다 그룹의 핵심인 현대차 주주총회인 만큼 정 회장의 등장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죠. 물론 정 회장은 자신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올라온 22일 현대모비스 주주총회, 등기임원을 맡은 15일 기아 주주총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인 고(故)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22주기 제사가 열린 2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옛 정 명예회장 자택에는 모습을 비췄습니다.
정 회장은 어디 있을까요.
동아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정 회장은 22일(현지 시간) 멕시코 몬테레이에 도착했습니다. 몬테레이는 기아의 멕시코 생산 공장이 있는 곳이죠.
정 회장이 주주총회까지 건너뛰고 멕시코 출장을 선택한 건 기아 몬테레이 공장의 생산 전략이 향후 기아의 북미와 세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정부가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미국, 멕시코,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는 한 대당 최대 7500달러 세금 감면 혜택을 누릴 수 있죠. 이 때문에 최근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도 몬테레이 서부의 산타 카탈리나에 기가 팩토리를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기아 몬테레이 공장에서 어떤 차량을 얼마나 생산하느냐에 따라 향후 경쟁이 치열한 북미 시장에서의 판매 성과도 좌우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 회장은 또 멕시코 등의 정부 관계자나 현지 인사를 만나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호소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멕시코 인접 국가나 남미지역을 방문할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정 회장은 올해 초부터 숨 가쁘게 해외를 찾고 있습니다.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UAE(아랍에미리트) 국빈 방문에 맞춰 경제사절단으로 합류했고, 이어 스위스 다보스로 날아가 ‘2023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누볐습니다. 1월 말 미국을 찾아 현지 인사들을 만났고, 2월에는 제네시스가 후원하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2023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대회가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비에라CC를 찾았죠. 2월 말 미국 워싱턴 출장 때는 12개국의 주미 대사들을 만나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3월에는 윤 대통령의 방일에 맞춰 일본 경제인들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갖는 등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정 회장의 연이은 해외 일정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재계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정 회장은 국내 재계 인사 중 해외 출장 횟수 1위일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해에도 8월 미국에서 IRA가 발효되자마자 곧장 미국으로 날아가 대응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어느 조직이든, 특히 그 조직이 클수록 수장의 동선은 그 자체로 메시지입니다.
그만큼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영향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전 세계 시장 판매량 3위에 올랐습니다.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3개 브랜드 차량 판매량은 총 684만5000대로 집계됐죠. 이는 1위인 일본 도요타(1048만3000대), 2위 독일 폭스바겐그룹(848만1000대)에 이은 성적입니다. 4위는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미쓰비시가 합쳐진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615만7000대), 5위는 미국 GM(593만9000대)이었죠.
현대차그룹의 사상 첫 글로벌 빅3 진입은 대단한 성과입니다. 특히 지난해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등이 완성차 업계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도요타(―0.1%)와 폭스바겐(―1.1%), 르노-닛산-미쓰비시(―14.1%), GM(―5.7%) 등의 판매량은 감소세를 보였죠. 하지만 현대차그룹만큼은 판매량이 2.7% 증가하는 실적을 냈습니다.
문제는 올해도 이 같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차는 올해 판매 목표를 전년 대비 9.6% 증가한 432만1000대로 공개했고, 기아는 약 10% 증가한 약 320만 대로 잡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 침체가 우려되는 시점이었고,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비자 구매력 약화 등을 고려하면 상당히 공격적이라는 평가가 있었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판매량 80% 이상이 발생하는 해외시장에서의 선전이 반드시 이어져야 합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올해 1월 월간 판매량 10만788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8% 늘었고, 2월에도 12만2111대로 전년 동기 대비 16.2% 늘어나는 등 호실적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3위 자동차 시장으로 떠오른 인도에서의 선전도 기대를 모으는 대목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1월 인도 시장 점유율 2위(22.6%)로 일본 스즈키와 인도 마루티의 합작 브랜드 마루티(42.2%)를 쫓고 있습니다.
정 회장은 연이은 해외 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가 팔릴 새로운 길을 찾아올 수 있을까요. 지난해 자동차는 수출 541억 달러로 집계돼 사상 처음으로 5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수출 효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대차·기아의 부진은 한국 경제에도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입니다. 현대차그룹의 선전이 계속될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입니다.
이건혁기자 gun@donga.com
현대차는 2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사옥에서 제55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현대자동차 제공.
그런데 현대차의 미래를 이야기 하는 자리에 한 명이 안 보입니다.
바로 현대차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죠. 현대차의 대표이사로는 장재훈 사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 회장 역시 현대차의 사내이사인데다 그룹의 핵심인 현대차 주주총회인 만큼 정 회장의 등장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죠. 물론 정 회장은 자신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올라온 22일 현대모비스 주주총회, 등기임원을 맡은 15일 기아 주주총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인 고(故)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22주기 제사가 열린 2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옛 정 명예회장 자택에는 모습을 비췄습니다.
정 회장은 어디 있을까요.
동아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정 회장은 22일(현지 시간) 멕시코 몬테레이에 도착했습니다. 몬테레이는 기아의 멕시코 생산 공장이 있는 곳이죠.
기아의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 전경. 기아 제공.
기아 몬테레이 공장은 2016년 준공된 기아의 4번째 해외 공장입니다. 기아 K3(현지명 포르테), 프라이드 등을 주력으로 생산합니다. 연간 생산 능력은 2022년 기아의 사업보고서 기준 40만 대로 인도 공장(37만3000대)이나 미국 조지아 공장(34만 대), 유럽 슬로바키아 공장(33만 대)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 생산량은 26만5000대로 가동률 66.3%를 기록해 기아 전체 평균 가동률인 94.6%보다 낮습니다. 지난해 기아는 매출 86조5590억 원, 영업이익 7조2331억 원으로 연간 기준 역대 최고 수준을 달성했죠. 만약 멕시코 공장 가동률이 조금 더 향상돼 판매량이 늘었으면 이 숫자는 더 커졌을 겁니다.정 회장이 주주총회까지 건너뛰고 멕시코 출장을 선택한 건 기아 몬테레이 공장의 생산 전략이 향후 기아의 북미와 세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정부가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미국, 멕시코,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는 한 대당 최대 7500달러 세금 감면 혜택을 누릴 수 있죠. 이 때문에 최근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도 몬테레이 서부의 산타 카탈리나에 기가 팩토리를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기아 몬테레이 공장에서 어떤 차량을 얼마나 생산하느냐에 따라 향후 경쟁이 치열한 북미 시장에서의 판매 성과도 좌우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 회장은 또 멕시코 등의 정부 관계자나 현지 인사를 만나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호소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멕시코 인접 국가나 남미지역을 방문할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정 회장은 올해 초부터 숨 가쁘게 해외를 찾고 있습니다.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UAE(아랍에미리트) 국빈 방문에 맞춰 경제사절단으로 합류했고, 이어 스위스 다보스로 날아가 ‘2023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누볐습니다. 1월 말 미국을 찾아 현지 인사들을 만났고, 2월에는 제네시스가 후원하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2023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대회가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비에라CC를 찾았죠. 2월 말 미국 워싱턴 출장 때는 12개국의 주미 대사들을 만나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3월에는 윤 대통령의 방일에 맞춰 일본 경제인들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갖는 등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부터), 구광모 ㈜LG 대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도쿄 게이단렌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윤석열 대통령 발언이 끝나자 박수치고 있다. 도쿄=뉴시스.
정 회장의 연이은 해외 일정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재계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정 회장은 국내 재계 인사 중 해외 출장 횟수 1위일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해에도 8월 미국에서 IRA가 발효되자마자 곧장 미국으로 날아가 대응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어느 조직이든, 특히 그 조직이 클수록 수장의 동선은 그 자체로 메시지입니다.
그만큼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영향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전 세계 시장 판매량 3위에 올랐습니다.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3개 브랜드 차량 판매량은 총 684만5000대로 집계됐죠. 이는 1위인 일본 도요타(1048만3000대), 2위 독일 폭스바겐그룹(848만1000대)에 이은 성적입니다. 4위는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미쓰비시가 합쳐진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615만7000대), 5위는 미국 GM(593만9000대)이었죠.
현대차그룹의 사상 첫 글로벌 빅3 진입은 대단한 성과입니다. 특히 지난해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등이 완성차 업계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도요타(―0.1%)와 폭스바겐(―1.1%), 르노-닛산-미쓰비시(―14.1%), GM(―5.7%) 등의 판매량은 감소세를 보였죠. 하지만 현대차그룹만큼은 판매량이 2.7% 증가하는 실적을 냈습니다.
동아일보 3월 16일자 B3면. 동아일보 DB
문제는 올해도 이 같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차는 올해 판매 목표를 전년 대비 9.6% 증가한 432만1000대로 공개했고, 기아는 약 10% 증가한 약 320만 대로 잡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 침체가 우려되는 시점이었고,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비자 구매력 약화 등을 고려하면 상당히 공격적이라는 평가가 있었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판매량 80% 이상이 발생하는 해외시장에서의 선전이 반드시 이어져야 합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올해 1월 월간 판매량 10만788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8% 늘었고, 2월에도 12만2111대로 전년 동기 대비 16.2% 늘어나는 등 호실적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3위 자동차 시장으로 떠오른 인도에서의 선전도 기대를 모으는 대목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1월 인도 시장 점유율 2위(22.6%)로 일본 스즈키와 인도 마루티의 합작 브랜드 마루티(42.2%)를 쫓고 있습니다.
현대차가 인도에서 선보인 ‘디 올 뉴 베르나’ 현지 광고 영상. 현대자동차 유튜브 채널 캡쳐.
하지만 다른 해외 시장은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2월 유럽 시장에서 현대차·기아 점유율은 8.6%로 1월 점유율 9.4%에 비해 0.8%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지난해 판매가 부진했던 다른 브랜드들의 반격이 본격화됐기 때문이죠. 여기에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을 타개할 수단은 여전히 요원한데다, 공들여 키웠던 러시아 시장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인해 회복 시점조차 계산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 회장은 연이은 해외 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가 팔릴 새로운 길을 찾아올 수 있을까요. 지난해 자동차는 수출 541억 달러로 집계돼 사상 처음으로 5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수출 효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대차·기아의 부진은 한국 경제에도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입니다. 현대차그룹의 선전이 계속될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입니다.
이건혁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