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랙터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람보르기니가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계기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자신이 산 페라리 스포츠카의 문제점을 페라리 창업자 엔초 페라리에게 전달하려 했지만 뜻밖의 냉대에 분노해 직접 스포츠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모든 성공 신화에는 어느 정도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어서 람보르기니와 페라리 사이에 실제로 마찰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페라리에 관한 그의 경험이 또 하나의 특별한 스포츠카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투우가 주는 강인하고 강력한 인상처럼 람보르기니의 시작도 빠르고 저돌적이었다. 페라리에서 명차 250 GTO를 개발했던 조토 비차리니를 비롯해 당대 걸출한 엔지니어들을 영입해 만든 첫 차 350 GTV는 공장 건설과 함께 개발이 진행돼 1963년 10월 토리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다. 시험 제작 개념으로 만들어진 350 GTV는 보완과 개선을 거쳐 이듬해 5월부터 350 GT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람보르기니는 1968년 첫 4인승 모델인 이슬레로를, 1970년에는 그보다 조금 더 작은 2+2 모델인 하라마를, 1972년에는 첫 8기통 엔진 모델인 우라코를 내놓으며 제품군 확장에 나섰지만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런 분위기는 1971년에 콘셉트카로 나와 큰 반향을 일으키고 1974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쿤타치로 바뀌었다. 미우라에서 시작한 람보르기니의 슈퍼카 계보를 잇는 모델로, 쿤타치는 완전히 새로운 설계와 더불어 미래적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쿤타치는 1990년까지 16년 동안 생산됐는데 이는 높은 인기 때문이라기보다 1970년대에 있었던 석유 파동 여파로 회사가 어려웠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이미 1974년에 경영에서 손을 뗐고, 1980년에 스위스의 부호 미므란 형제가 인수해 기사회생하기까지 회사는 사라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미므란 형제가 회사를 이끄는 동안 람보르기니에서는 쿤타치와 엔트리 모델 할파, 브랜드 첫 오프로드 모델인 LM002가 나왔다. 그 뒤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회사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 쿤타치의 후속 모델인 디아블로가 유일한 생산 모델로 회사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됐다.

6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람보르기니는 엄청나게 큰 규모로 성장했다. 2022년을 기준으로 직원 수는 2000명이 넘고, 연간 판매량은 9233대에 이르렀다. 판매량의 절반 이상은 2018년에 데뷔한 우루스가 차지하고 있지만 V10 엔진 스포츠카 우라칸과 2022년 말 생산을 중단한 V12 엔진 모델 아벤타도르의 판매도 탄탄하게 성장을 뒷받침했다. 아벤타도르의 혈통을 이어받은 브랜드 이미지 리더 모델인 레부엘토는 설립 6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아 지난 3월에 공개됐다.

우리나라를 찾을 레부엘토는 전동화 시대를 맞아 V12 엔진 기반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춘 람보르기니의 첫 양산 모델이다. 또한 ‘디레치오네 코르 타우리’라는 이름의 미래 전략 아래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동화 및 탄소중립화 계획의 첫 결실이기도 하다. 람보르기니는 2024년에는 모든 모델을 하이브리드화하고 2025년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0% 감축하고 2028년에는 첫 순수 전기 모델을 내놓을 예정이다. 60년 동안 이어진 람보르기니 스포츠카의 유전자는 더 깨끗하고 더 강력한 전동화 동력계에 담겨 앞으로도 모는 이들을 흥분케 할 것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