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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車, LSD는 왜 없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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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8-26 08:25:14업데이트 2023-05-10 21:39:51
자동차업계 요구에 정부가 의무사항서 배제

최근 출시되는 SUV는 승용차와 동일한 모노코크방식의 차체가 일반적이다. 운전자들의 오프로드보다 이용 빈도가 떨어지고, 세단과 같은 편안한 승차감을 요구해서다. 이렇다 보니 강인함이 부각됐던 과거와 달리 SUV는 세련된 이미지와 공간활용성이 중요 항목으로 떠올랐다. 그 결과 'SUV=험로 주파용 네 바퀴 굴림 차'라는 공식도 깨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4WD가 아닌 2WD를 활용하면 연료효율 향상은 물론 판매가격도 내릴 수 있어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장점이 된다는 시각이 널리 퍼졌다.

제조사들이 강조하는 소위 '세단 기반의 도심형 SUV'의 인기는 주5일 근무가 일반화되면서 크게 늘었다. 평소 시내에서 출퇴근 용도, 주말엔 가족과 함께 나들이용으로 적합해서다. 따라서 굳이 4WD 또는 AWD가 아니라도 형태만 SUV라면 괜찮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얻었다.

하지만 4WD 기반으로 제작된 차를 2WD로 만들면서 부작용도 일부 발생했다. 운전자들이 험로 탈출 능력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특징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웅덩이나 모래 등에 빠져 탈출에 실패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국토해양부(당시 건설교통부)에서는 이런 점을 우려해 1996년 12월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자동차관리법에서 짚형을 다목적으로 한글화 했고, 다목적형 승용자동차에 대한 유형별 세부 기준을 마련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다목적차는 "후레임형이거나 4륜구동장치 또는 차동제한장치를 탑재하는 등 험로운행이 용이한 구조로 설계된 자동차로서 일반형 및 승용겸화물이 아닌 것"으로 명시돼 있다. 따라서 이 기준에 해당되거나 이에 준하는 안전장치를 갖춰야 다목적차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국내에선 모하비, 테라칸, 쏘렌토(구형), 렉스턴 등이 4WD면서 프레임방식 차체를 사용한다. 게다가 차동제한장치(LSD)도 탑재된다. 흔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통 SUV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현재 출시되는 투싼ix, 스포티지R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SUV는 모노코크방식에 2WD가 기본이고 LSD도 빠져 있다. 그래서 제조사들은 세단과 SUV의 중간 형태인 CUV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LSD다. 자동차에는 엔진의 동력을 좌우 구동 바퀴에 각각 다르게 전달시켜주는 차동장치(Differential Gear)가 있다. 구동력이 필요한 바퀴에 힘을 많이 전달하는 장치다. 그런데 한쪽 바퀴가 모래나 구덩이 등에 빠졌을 때도 바퀴에 힘이 쏠려 오히려 탈출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바퀴가 헛돌아 다른 차가 견인해주거나 사람이 차를 들어 올리면서 위기를 탈출하는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LSD는 차별적 동력전달을 막는 역할을 하기에 차동제한장치(Limited Slip Differential)라 부른다. 따라서 한쪽 바퀴가 헛도는 상황이 발생해도 접지력이 유지된 다른 바퀴 덕분에 무난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결국 험로 탈출을 위해 필요한 기능이지만 자동차 제조사들은 어느 순간 슬그머니 해당 기능을 배제한 채 신차를 내놓고 있다.

제조사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국토해양부가 새로운 규정을 내놨다는 것. 당시 업계는 "LSD 대신 ESP(혹은 VDC, ESC 등) 탑재로 역할을 대신할 수 있어 안전상 문제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고,국토부는 이를 수용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게 달라졌는지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일부에선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분명 내놓고 있다.

▲ESP 의무 탑재, LSD 빼도 된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최근 차체자세제어장치(ESP/ESC/VDC등)가 기본 적용되면서 일부 기능이 겹치는 장비를 넣을 필요가 없다는 표면적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게다가 국토부와도 협의가 끝난 만큼 LSD 삭제는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이다.

제조사 입장에선 LSD를 없애는 편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가장 큰 이유는 원가절감. 국산차에 탑재된 LSD는 제조 원가 기준으로 20만원 정도다. 따라서 LSD 배제가 이익 면에서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ESP 등의 기술이 점점 발달하는 데다 오프로드를 다니는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여서 LSD의 불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한 LSD 작동시 발생하는 고유의 소음과 스티어링 부조화 등으로 소비자 불만이 많았던 점도 삭제의 배경이 됐다. 여기에 10kg 이상 무게를 줄일 수 있었던 점도 매력이다. 나아가 2012년부터 ESP의무 탑재가 예정된 상황에서 LSD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부품을 비롯한 정비업계, 그리고 완성차 제조사 내에서도 LSD의 불필요성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를 지우지 못하는 입장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ESP와 LSD의 험로 탈출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자세제어를 위해 엔진 출력을 줄이거나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방식이 ESP"라면 "LSD는 엔진의 힘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기에 안전성에선 오히려 유리한 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이튼에 따르면 LSD는 일정 수준의 힘을 넘어서면 미끄러짐(슬립)이 발생할 수 있어 디퍼런셜을 아예 잠그는(Lock) LD로 빠르게 전환하는 추세다. 주로 뒷바퀴굴림방식 차종에 적용되며, 조향 문제로 적용이 어려웠던 앞바퀴 굴림 방식의 LD는 필요할 때만 작동할 수 있도록 했다. 이튼오토모티브콘트롤스 양희곤 이사는 "LSD의 차세대 방식인 LD는 미국에서 연간 100만개 이상 판매되고 있으며, 국내에선 소형 상용차를 중심으로 탑재된다"고 말했다. 그는 ESP로 LSD 기능을 대신하는 점에 대해 "트랙션은 아무래도 LSD가 유리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자식 LSD의 유행
최근엔 기계식 LSD를 대신해 전자식이 탑재되는 경우도 있다. 폭스바겐 XDS(골프 GTI, GTD 등에 탑재), 볼보 CTC(S60에 탑재) 등이 그 예다. 해당 기능이 탑재된 차는 최대 가속 시에도 일정한 원을 그릴 수 있다. 안쪽 바퀴에 제동을 보냄과 동시에 동력을 바깥쪽으로 모두 전달해 코스를 이탈하지 않도록 돕는 기술이다. 실제 주행 시에도 탁월한 도로장악력으로 날렵한 코너링 성능을 보인다. 기계식 LSD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물론 앞바퀴굴림방식의 전자식 LSD로 주행 감성을 높이려는 차에 적용했을 뿐, 험로탈출용은 아니다.

현재 기계식 LSD는 스포츠카나 4WD 차종을 제외하면 대체로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차체자세제어장치(ESP/ESC/VDC)가 탑재돼 일부 기능을 구현하고 있는 데다 전자식 LSD의 개발로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 연구원은 "전자시계와 아날로그 시계의 구현 방식이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면서 "전자식 LSD를 붙여 성과가 같다면 기계식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전자식 LSD를 탑재해 다카르랠리에 참가, 우승을 거머쥔 폭스바겐 투아렉이 좋은 예다. 폭스바겐코리아 기술교육담당 이재혁 과장은 "예를 들어 일반적 ABS 시스템은 흙이나 자갈 등의 노면 상태에선 제동거리가 더 늘어난다"면서 "투아렉에 적용된 ABS+(플러스)는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 제동 시간을 늘렸다"고 전했다. 모터스포츠나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전자적 제어를 가능케 한다는 것.

소비자는 제조사가 기계식이든 전자식이든 같은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면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제조사의 이익 증대와 소비자의 지출 감소가 LSD의 배제로 이어졌던 셈이다. 이를 두고 제조사는 정부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며, 국토부는 제조사의 요청을 들어줬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어떤 방식이 얼마나 더 안전한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찬규 기자 star@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