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의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3’는 준수한 주행 성능과 세련된 디자인, 거기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춰 현대자동차그룹 보급형 전기차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기차=고가(高價)’라는 고정관념을 허문 가격 책정이다. 인도네시아산 배터리를 전략적으로 적용해 시작가 3995만 원으로 판매가를 책정했다. 국내 기준으로 전기차 구매의 진입 장벽을 확연히 낮췄다. 서울시 기준 보조금까지 더하면 최저 3373만 원에 ‘미래 모빌리티’인 전기차를 경험할 수 있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비가 내리던 10일 오후 EV3를 타고 서울 은평구에서 북부간선도로를 거쳐 송파구의 한 식당까지 왕복 약 80km의 여정을 떠났다. 도심과 고속도로, 그리고 좁은 골목길까지 아우르는 이 코스는 소형 전기 SUV의 기능을 시험하기에 완벽했다.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150kW(201마력) 모터가 선사하는 즉각적인 토크감이 느껴졌다. 묵직하면서도 경쾌하게 반응하는 EV3를 몰아 보니 운전의 즐거움이 더해졌다. 급가속이 필요한 고속도로 합류 상황에서도 주저 없이 앞으로 치고 나가는 힘이 인상적이었다.
파워만큼이나 승차감도 매끄러웠다. ‘노면 진동을 똑똑하게 잡아주는’ 스마트 주파수 제어 댐퍼가 적용된 서스펜션은 맨홀과 울퉁불퉁한 도로를 지날 때마다 그 가치를 증명했다. 빗길 주행에서도 차체가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며 불필요한 롤링이나 피칭 없이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노면이 젖은 상황에서는 브레이크 성능이 더욱 중요하다. EV3는 이 부분에서도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제동 시 선형적이고 정확한 반응으로 빗길 주행의 불안감을 크게 줄였다.
회생제동 강도를 운전자 취향에 맞게 세 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은 도심 정체 구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강한 회생제동 모드에서는 브레이크 페달을 거의 밟지 않고도 도심 주행이 가능해 편의성이 돋보였다.
하만카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선명한 음질은 빗소리와 도로 소음을 상쇄하며 주행 품질을 한층 높였다. 전기차 특유의 정숙성과 프리미엄 오디오의 조화는 장거리 주행에서도 피로감을 크게 줄여주는 요소였다.

목적지 인근 송파구 식당가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이 차량의 진가가 더욱 빛났다. 적절한 차체 크기는 마주 오는 차량을 회피하거나 협소한 주차 공간에 진입할 때 장점이 됐다. 효율적인 공간 설계로 외부에서는 날렵하게, 내부에서는 넉넉하게 느껴지는 균형감이 인상적이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