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낯익은 미래’의 귀환… 독일 전기차 ‘헤리티지’서 실마리 찾다

정진수 기자
입력 2025-09-16 13:41:34
헤리티지는 양면성을 지닌다. 과거에 집착하는 구태가 될 수도 있지만,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산업계는 점점 후자에 주목하고 있다. 익숙함을 통해 소비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브랜드 전성기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전략이 효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은 ‘IAA 모빌리티 2025’에 참가한 폴크스바겐그룹·메르세데스-벤츠·BMW 등 독일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움직임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한때 파격적인 혁신에 집중하던 이들이 최근 들어 방향을 전환했다. 기존에 고수했던 미래지향적 이미지보다 익숙한 감성과 브랜드 유산을 앞세우며 전기차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이번 IAA에서 폴크스바겐그룹이 전면에 내세웠던 ID.폴로는 중요한 방향성을 담고 있는 모델이다. 현장에서 만난 안드레아스 민트 폴크스바겐 디자인 총괄은 “대담하면서도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디자인을 하는 게 목표”라며 “이를 바탕으로 개발된 ID.폴로도 차량 중신 선을 올려 마치 웃고있는 듯한 희망적인 모습을 전달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전기차 시대를 알린 ID.3나 ID.4가 보여준 미래지향적이면서도 간결한 형태를 대신해 클래식 폴로의 실루엣을 연상시키는 전통적 디자인 요소를 반영한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여기서 더 나아갔다. 기존 ID. 숫자 체계를 폐기하고, 그 자리에 ID.폴로처럼 익숙한 이름을 부활시키기로 했다. 이는 헤르베르트 디스 전 폴크스바겐 CEO에 이어 취임한 토마스 셰퍼의 구상이다. 지난 2022년 공식 업무를 시작한 그는 ‘정체성’을 되찾겠다며 전면 개편에 나섰다. 이를 위해 셰퍼는 지난해 디자인 책임자를 교체하고 안드레아스 민트를 영입했다.

이는 폴크스바겐만의 변화는 아니다. BMW 신형 iX3는 외관과 실내 모두 현대적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전면 그릴은 1960년대 ‘노이에 클라쎄’ 시리즈에서 착안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아예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디자인의 구분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모토 ‘웰컴 홈’으로 브랜드 140년 역사에 걸맞은 정체성 회복에 나섰다.

이는 단순한 복고를 넘어선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감성은 물론, 좋은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기술만으로는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또한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은 거리감을 줄 수 있다는 게 공통된 업계의 시각이다. 헤리티지에서 실마리를 찾는 게 지금처럼 불확실한 시대에 더 유효할지도 모른다.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