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자율주행 미래를 가늠하는 현대자동차그룹 대학생 자율주행챌린지가 14개월 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세계 최초 양산차 기반 자율주행 서킷 대회로 치러진 올해는 건국대가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번 우승으로 건국대 오토KU-R팀은 상금 1억 원을 비롯해 미국 자동차 산업 견학, 채용 특전의 혜택을 누리게 됐다.
자율주행 챌린지는 국내 대학생들의 기술 연구 참여를 통해 자율주행 기술 개발 저변 확대와 우수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현대차그룹이 2010년부터 개최해 오고 있다. 이전까지는 도심 속 도로를 막아 놓고 대회를 치렀는데 이번에는 과감하게 서킷으로 무대를 옮겼다. 참가팀은 각자 연구 개발한 알고리즘에 따라 라이다·레이더·카메라 등 센서류를 최적의 위치에 설치해 자율주행차를 제작하고, 3차례의 연습 주행을 통해 고속 자율주행에 필요한 기술을 고도화했다.
10일 경기도 용인 스피드웨이 서킷에서 치러진 결선에는 전날 예선에서 추린 상위 3팀(건국대·카이스트·인하대)이 승부를 벌였다. 예선 1위 건국대는 결승전 폴포지션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고, 카이스트와 인하대가 2, 3번째 그리드로 뒤를 이었다.
이날 자율주행 챌린지의 관전 재미는 고난도 미션 수행에 있었다. 2.7km 코스 10바퀴를 도는 상황에서 특정 구간 주행 속도와 추월 제한, 목적지 정차 등 까다로운 과제를 달성해야 했다. 규정된 제한속도를 초과하거나 추월 규정, 주차 규정을 위반한 차량은 총 주행시간에 페널티가 주어진다. 또한 정해진 코스를 이탈하는 차량은 실격 처리된다. 기존 대회에서는 완주가 목표였다면 이번에는 한 단계 높은 프로그램 코딩 능력을 요구하는 등 수준을 높였다.
결선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아이오닉 5 자율주행차가 동시에 출발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상위팀끼리 경쟁이라 그런지 단순 출발 실수 없이 순조롭게 자율주행이 시작됐다. 첫 바퀴는 시속 30km 속도 제한, 그 이후 네 번째 랩까지는 시속 100km를 넘기지 말아야한다.
30km 속도 제한이 풀리자 건국대는 직선구간에서 곧바로 시속 100km까지 끌어올렸다. 이때부터 두 차와의 격차는 1분을 넘겼다. 곡선에서는 시속 60km까지 속도를 높였다. 이는 실제 드라이버가 용인 서킷 코너 구간을 통과하는 속도와 맞먹는 수준이다. 코딩을 코스이탈 한계치까지 설정했지만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반면 카이스트는 시속 60km가 넘지 않는 선에서 안정적인 주행을 이어갔다.
급기야 건국대팀은 세 바퀴째 만에 하위에서 주행 중이던 인하대를 따라잡았다. 추월이 이뤄지는 장면에서는 박진감이 넘쳤다. 건국대팀은 코너 추월이 제한된 상황에서 적절한 가속과 감속으로 거리를 유지하며 기회를 엿봤다. 한동안 저속주행이 펼쳐졌고, 그 사이 카이스트팀이 바짝 따라붙어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다. 카이스트의 안정적인 전략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5랩째 코너를 빠져나오자마자 건국대의 첫 번째 추월이 일어나면서 승부는 사실상 갈렸다. 뒤따르던 카이스트는 코너 진입 직전 추월을 실패하면서 주춤했고, 인하대와 엉키면서 시간적 손해를 봤다.
두 번째 속도 제한이 풀리면서 건국대는 더욱 과감한 주행을 수행했다. 그야말로 쾌속 질주였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레코드라인을 정확하게 지나가면서 독무대를 펼쳤다. 주행 경로에서 한치의 오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랩에서는 카이스트를 코앞까지 따라붙으며 압도적으로 우승했다. 두 차는 2분 이상 기록 차이가 났다. 마지막 과제인 정차지점까지 지켜낸 건국대는 완벽에 가까운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였다.
결국 건국대 오토KU-R이 27분25초409, 카이스트 이어카-R팀 29분31초209의 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했고, 인하대 AIM팀은 알고리즘 오류로 코스를 이탈하며 방호벽을 박고 멈춰 실격됐다. 2위 카이스트팀에게는 상금 3000만 원과 싱가포르 견학 기회가 주어진다. 인하대 팀에게는 챌린지 상과 함께 상금 500만 원이 시상됐다. 1, 2위 수상팀에게는 추후 서류 전형 면제 등 채용 특전이 제공될 예정이다.
이번 자율주행챌린지 과정에서 현대차·기아 연구원들은 직접 자율주행 차량 제작에 필요한 기술 적용을 도왔다. 현대차그룹은 기술 교류회와 세미나를 통해 참가팀에게 차량 교육, 하드웨어 개조 및 점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및 개발 가이드를 제공했다.
김용화 현대차·기아 CTO는 “이번 대회는 기존 대회와 달리 고속에서의 인지·판단·제어기술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대회를 통해 선행 기술 경연의 장을 마련해 창의적인 인재가 자유롭게 역량 펼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