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올해 4월 28일 새벽 경기 광주시의 한 고속도로에서 견인차에 치여 숨진 故 문종찬 씨(32)의 빈소가 30일 하남마루공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 제공
문종찬 씨(32)는 올 4월 28일 새벽 2시 50분경 경기 광주시의 한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앞에서 갑자기 멈춰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와 부딪혔다. 충돌의 충격으로 다친 문 씨는 전복된 자신의 승용차에서 빠져나와 1차선 도로에 누웠다. 문 씨는 오전 3시 13분경 119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문 씨는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호소했고, “구급차가 곧 도착할 예정”이라는 대원의 안내에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통화를 끊고 1분 뒤 문 씨가 손목에 찬 애플워치로부터 ‘충돌 감지 긴급 신고’ 기능을 통해 재차 소방 신고가 접수됐다. 기계 음성으로 위치 좌표가 전달되는 사이, 현장에서 “여기 사람이 다쳤어요 방금” “여기 여기!”라고 다급하게 외치는 음성이 전화기 너머로 담겼다. 이 통화는 “기사님!”이라는 외침으로 끝났다. 구급대원들이 대처하는 사이 사설 견인차 5대가 서로 경쟁하듯 과속하며 사고 현장으로 달려왔고, 그 중 한 대가 문 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치어 숨지게 한 것이었다.
● 연간 특수차 사고 1200건…“리베이트가 원인”
‘도로 위의 흉기’로 불리는 사설 견인차, 일명 ‘렉카차’의 난폭 운전 탓에 인명, 재산 피해가 매년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태준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 동안 사설 견인차 등 특수차량이 낸 교통사고는 총 5990건이다. 매년 1200건 꼴.
경찰청 관계자는 “특수차량은 견인형, 구난형, 특수작업형으로 나뉘며, 이들을 세분화해 집계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실제 현장에선 사설 견인차 사고가 상당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고들로 인해 부상자는 5년 간 9001명, 사망자는 184명이다. 사고 원인은 안전불이행 3205건, 안전거리 미확보 1073건, 신호위반 576건 순이었다. 중앙선침범, 과속으로 인한 사망자도 매년 나왔다.
견인차들이 난폭 운전을 일삼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견인차 운임 요금을 법으로 정해놓고 이보다 높은 요금을 요구하면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견인업체들이 정비업체와 짜고 부품값을 제외한 사고 차량 수리비의 최소 15%, 통상 20~30%를 리베이트 받고 있다”며 “차량이 크게 부서진 사고일수록 리베이트 금액도 커서 난폭 운전을 유발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올해 4월 25일 경부고속도로 동탄터널에선 권모 씨(35)가 몰던 견인차가 빠른 속도로 진행 방향을 거슬러 후진하다가 뒤에 달려오던 김모 씨(26)의 SUV를 들이받았다. 권 씨는 뒤에서 발생한 다른 사고 현장에 빠르게 가려고 무리하게 50m 가량 후진 역주행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 피해자 김 씨는 전치 3주 진단을 받았고 차량은 완전히 부서졌다. 경찰은 19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권 씨를 불구속 송치했다.
● 일부 기사들, 증거 인멸 시도도
사설 견인차 기사들 일부는 사고를 낸 뒤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고 시도했다. 경기 광주경찰서에 따르면 앞서 문 씨를 치어 숨지게 한 견인차 운전자 박모 씨(32)는 사고 직후 자신의 견인차와 문 씨 차량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모두 뽑아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자신의 과실로 문 씨를 숨지게 한 사실을 입증할 증거들을 숨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현장 구급차의 블랙박스 영상에는 박 씨의 견인차가 문 씨를 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경찰은 박 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혐의로 지난달 검찰에 넘겼고 현재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자신의 과실부터 숨기려 했던 견인차 기사의 행동에 피해자 유족들은 분개했다. 문 씨의 유족은 9일 법원에 박 씨를 엄벌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문 씨의 유족은 2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가해 운전자가 우리를 만나자마자 (사과 대신) 합의 얘기를 먼저 꺼냈다”고 말했다.
● 美테네시주는 견인차 순번제 시행
미국은 견인업체들의 과열 경쟁을 막는 제도를 마련해 법으로 시행 중이다. 미국 테네시주(州)에선 교통사고 발생했을 때 운전자가 특정 견인업체를 호출하지 않으면, 법에 따라 주 경찰에 등록된 견인업체들이 정해진 순번에 따라 차례대로 돌아가며 출동한다. 먼저 연락을 받은 업체가 30분 동안 응답하거나 출동하지 않으면 다음 업체에 연락이 가도록 하는 구조다. 견인차 여러 대가 경쟁적으로 난폭 운전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호주에선 견인차량의 운행 속도를 시속 80km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조경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사설 견인업체들이 플랫폼을 형성한 뒤 콜을 받는 형태로 시스템을 개편하거나 보험사, 제조사 등의 용역을 받아 일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등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견인차의 난폭 운전으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운전자와 사업주에 대한 처벌 및 관리·감독 강화 등 국회에서 관련 법을 정비해나가겠다”고 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