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 있는 충전기로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전기차 화재 예방책으로 화재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진 90% 이상 충전된 전기차의 지하 주차장 주차를 제한하는 방침을 내놨다. 게티이미지코리아
1일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로 차량 100대 이상이 불타거나 손상된 사고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전기차 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정부는 배터리 제조사 공개나 완충 전기차 지하 주차 제한 등 여러 대책을 거론하고 있다. 이 같은 방안을 비롯해 전기차 자체와 충전기 등 기반시설에 관한 전기차 화재 종합 대책을 9월 초에 내놓을 계획이다.
15일 과학계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이 같은 대책에 대해 전기차 화재 피해를 줄이는 효과가 있긴 하겠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결국 배터리의 안전성을 높이는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 완충 제한, “궁극적 해결은 아니다”
서울시는 전기차 화재 예방책으로 90% 이상 충전된 전기차는 지하 주차장 주차를 제한하는 방침을 내놨다. 지하 주차장 특성상 전기차 화재를 진압하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화재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진 100% ‘완충’ 전기차의 지하 주차장 주차를 막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기차의 지하 주차장 진입을 다른 입주민들이 막아서는 등 갈등도 빚어지는 상황이다.
지상 주차는 전기차 화재 진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화재 발생 시 피해를 줄이고 공간이 확보돼 화재 진압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김도엽 한국화학연구원 에너지융합소재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전기차를 지상에 주차하면 여름철 차량 온도가 지하에 있을 때보다 높아질 수는 있지만 배터리는 차체 바닥에 있어 직사광선을 받지 않고 그 정도 온도 차로 위험성이 커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다만 배터리 충전 정도가 화재 발생 가능성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화재 발생 이후 차이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 충전량이 적은 차는 화재 규모를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화재 발생 자체에 대한 영향은 작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 진압이 어려운 이유는 연쇄반응이 일어나며 순식간에 온도가 치솟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배터리 충전량이 적으면 열폭주 연쇄반응이 시작하는 데 필요한 온도가 높아져 열폭주가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든다. 또 열폭주가 일어나더라도 전체 온도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
배터리 연구자인 조수근 포항가속기연구소 연구원은 “100% 충전된 배터리보다 90% 충전된 배터리가 화학적으로 안정적이지만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화재가 발생한 이후 차이를 조금 만드는 정도”라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또 “충전량 90% 기준은 일단 임시방편일 수 있다. 충전량이 절반 이하 수준으로 적으면 열폭주 연쇄반응이 유의미하게 약해지지만 제조사마다 배터리 셀이 다르고 주변 조건도 다양하기 때문에 안전 기준을 딱 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어 “1차적으로는 전기차 배터리 자체에서 화재 발생을 막는 것이 가장 좋고, 전기차 충전기 주변 인프라 등 차 외부에서도 2차, 3차로 화재 예방 대책을 동시에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공개는 바람직
배터리 정보는 그동안 업계에서 영업 비밀로 불리며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천 지하 주차장 화재를 일으킨 전기차에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른 제조사의 배터리가 탑재된 것이 확인되며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정부는 국내에 시판되는 모든 전기차 제조사에 배터리 제조사 자발적 공개를 권고하기로 했다.
연구자들은 배터리 제조사 공개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보고 있다. 제조사들이 좀 더 책임 있게 배터리를 개발, 제조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제조사를 공개하면 배터리 제조 업체들도 조금 더 안전한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신경 쓸 것”이라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다만 중국산 배터리라고 해서 품질이 낮다는 건 오해일수 있다”며 “제조사마다 배터리 셀 구조 등이 다르긴 하지만 배터리 자체만의 문제로 단정짓기에는 차체 등 변수가 많아 다른 요인이 관여됐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