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 지원책 폐지 방침을 밝혀 온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가 전기차 지원책을 통한 맞대응에 나섰다. 전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에 중국의 전기차 공세, 미국의 전기차 지원 철폐까지 더해지면 국내 전기차 업계에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정부 주도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15일 오전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등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친환경차·이차전지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전기차 수요 둔화로 업계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 신(新)정부 출범에 따른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리 산업계와 긴밀히 협력해 비상한 상황을 정면 돌파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대대적인 전기차 지원책 폐지를 여러 차례 시사해 왔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당선인이 20일(현지 시간) 취임하자마자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전기차 장려책을 무위로 돌리는 행정명령을 발동할 계획이라고 14일 보도했다. 그 대신 화석연료 생산과 소비를 장려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에 맞서 국산 대형 전기차 특화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기아 EV9 등 국산 대형 전기차의 경쟁 상대는 미국의 테슬라 차종 중 가장 큰 ‘모델X’가 꼽힌다. 모델X의 축간(앞뒤 바퀴 사이)거리는 2965mm로 대형 전기차(축간거리 3050mm 이상)보다 살짝 짧은 탓에 중형 전기차로 분류된다.
현재 중·대형 전기차의 친환경차 세제 혜택 기준은 연비 kWh(킬로와트시)당 3.7km 이상이다. 정부는 이를 중형 kWh당 4.2km 이상, 대형 kWh당 3.4km 이상으로 세분화한다. 모델X의 연비는 kWh당 3.8∼4.2km 수준이라 향후 친환경차 세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가격 경쟁력이 그만큼 약화되면서 관련 수요가 국산 대형 전기차로 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대형 전기차의 신규 모델 출시를 독려하려는 차원”이라며 “중형 전기차는 연비 기준이 높아진 만큼 친환경차 세제 혜택에서 제외되는 차량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1조5000억 원을 들여 전기차 보조금 지원도 확대한다. 제조사의 전기차 가격 할인에 비례해 보조금을 늘리고, 청년(만 19세 이상 34세 이하)의 생애 첫 차 보조금도 20% 추가 제공할 계획이다. 청년이 생애 첫 차로 판매가 약 5000만 원의 전기차를 구매하면 약 800만 원의 절약 효과가 기대된다.
정부는 운전면허 시험을 전기차로 치를 수 있도록 올해 시험 차량의 10%를 전기차로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기차 충전 병목 지점에 4400기의 급속충전기를 추가 보급하고, 대형마트나 극장 등 2∼3시간 체류에 적합한 곳에 중속충전기 도입도 촉진한다. 또 이차전지 분야 정책금융에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어난 7조9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 지정된 4개 이차전지 특화단지의 인프라 구축에도 지난해보다 60억 원 증가한 국비 252억 원을 공급한다.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