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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파도 맞은 한국 車산업… “노사 대타협이 돌파구”

김성규기자
입력 2015-07-22 03:00:00 업데이트 2023-05-10 04:28:07
한국 자동차산업이 환율, 고임금, 환경규제의 3대 악재를 맞았다. 악재가 판매 부진으로 이어지면서 이번 기회에 고용과 임금을 주고받는 노사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일본이나 독일 등 선진국들은 과거 노사 대타협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바 있다. 한국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국 등 자동차산업이 몰락한 나라들의 뒤를 밟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 환율·고임금·환경규제 삼중고 겪는 차업계


국내 자동차업계는 환율조건 악화, 노동비용 상승, 환경규제 강화의 3가지 위기를 맞고 있다. 수출이 70%를 차지하는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엔화 약세와 유로화 약세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 중남미 등 신흥시장의 경기 침체로 자동차 수요마저 감소하는 상황이다. 현대·기아자동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2012년 8.7%에서 지난해 7.9%로 떨어졌다. 안방인 국내에서도 수입차들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치솟는 임금도 부담이다. 지난해 완성차 5개사(현대차 기아차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의 평균 근로자 임금은 9234만 원. 2000년의 3215만 원에 비해 거의 3배로 올랐다.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인건비 증가율은 일본이 ―6.6%, 미국이 0.1%지만 한국은 6.6%를 기록했다.

여기에 환경규제도 생산비용을 올리면서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관련 환경규제에는 배출권거래제를 비롯해 유해배출가스·평균연료소비효율·평균온실가스·자동차재활용·신화학물질규제 등이 있는데 이 규제를 모두 시행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 중 3가지만 시행하고, 유럽연합(EU)은 평균연비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 한국은 교훈 없이 외환위기 넘겨

전문가들은 이처럼 삼중고를 겪는 국내 자동차업계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노사 대타협을 통한 협력적 노사관계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회사가 고용 안정을 보장하면 노조는 임금 동결을 감내하며 사측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는 ‘빅 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위기를 이겨낸 경험이 있는 자동차 선진국들이 거쳐 온 과정이다. 일본 도요타는 1951년 경영위기로 인원 감축을 추진했다. 당시 노조는 2개월간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결국 종업원의 10%인 1500명이 정리 해고되고 창업자를 포함한 경영진 전원이 사퇴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일본차도 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도요타 노조는 1962년 노사선언으로 노사 협조를 지향하는 강령을 채택하고 노선 전환을 공식화했다. 1951년 파업은 도요타 역사상 유일한 파업이 됐다. 도요타는 2008년 전 세계 금융위기 때도 근로자와 약속한 일본 국내 생산 300만 대를 달성해 노사 신뢰를 이어갔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1990년대 초 서유럽 시장의 수요 감소와 일본차의 유럽시장 진출, 상대적 고임금 등으로 위기를 맞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폴크스바겐 노사는 1993년 ‘일자리 공유 협약’을 내놨다. 2년간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에 근로시간을 주 36시간에서 28.8시간으로 단축해 근로자들의 임금을 16% 감축하는 것이 골자다.

2000년대 초 독일 내 생산 물량이 줄어들자 2001년 기존 공장보다 임금이 약 20% 낮은 ‘오토5000’이라는 새 공장을 건설하는 계획에 노사가 합의하면서 일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협력적 노사 관계를 만들지 못한 국가들의 자동차산업은 결국 몰락했다. 김준규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산업조사팀장은 “1970, 80년대 영국은 강성 노조를 노동당 정부가 비호해 생산성과에 관계없이 임금이 계속 상승한 것이 자동차산업 쇠퇴의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호주에서도 최근 고임금에 GM 도요타 포드 등의 기업이 연이어 철수하고 있다”며 “한국도 이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경고했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에 자동차업체의 구조적 취약점이 드러났지만 노사 대타협 없이 산업 구조조정과 해외 매각으로 위기를 탈출했다. 김 팀장은 “당시 협력적 노사관계를 만들지 못해 노사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며 “글로벌 경쟁력이 고용 보장의 핵심이라는 노사의 공통 인식이 없다면 현재 위기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