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4일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대중 브랜드를 뛰어넘기 위해 2008년 내놓은 제네시스는 최고의 상품성을 인정받았다”며 “상품에서 시작한 제네시스는 이제 별도의 새로운 브랜드로 탄생한다”고 선언했다. 도요타의 렉서스처럼 별도의 고급 브랜드를 구축해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미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차종마다 이름이 다른 현대차와 달리 제네시스를 상징하는 알파벳 ‘G’와 차급 등을 고려한 숫자가 조합돼 이름을 결정한다. 대형 럭셔리 세단은 제네시스 ‘G90’, 기존의 2세대 제네시스는 ‘G80’, 2017년 하반기에 나오는 중형 럭셔리 세단은 ‘G70’으로 정해진다. 앞으로 나올 중·대형 럭셔리 SUV와 고급 스포츠형 쿠페도 G와 숫자를 조합할 계획이다. 다만 에쿠스의 후속으로 다음 달 출시하는 모델은 국내에 한정해서만 ‘EQ900’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이날 현대차는 벤틀리의 수석디자이너를 지낸 벨기에 태생의 루크 동커볼케(50)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동커볼케는 내년 상반기부터 현대디자인센터 소장(전무급)으로 일하면서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사장과 함께 제네시스와 현대차 브랜드의 디자인 개발을 맡는다.
현대차가 10여 년의 준비 끝에 별도 브랜드를 만든 것은 그만큼 고급 차 이미지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가 단기간에 전 세계에서 판매량 기준 5위에 오를 만큼 성장했지만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는 여전히 ‘가격 대비 좋은 차’라는 수준의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에 중국의 토종 자동차업체들이 최근 현대차의 절반 가격에, 겉으로 드러난 성능에서 큰 차이가 없는 차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현대차의 기존 전략은 크게 흔들렸다. 최근 5년간 전 세계 고급차의 연평균 판매 증가율(10.5%)이 대중차 시장 증가율(6.0%)을 크게 웃도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
정 부회장은 “고급차 시장은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10% 정도지만 고객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완성차 시장을 견인하고 있어 제네시스 브랜드로 기회를 살려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 측은 이날 향후 시장점유율 목표나 가격 정책은 밝히지 않았으나 경쟁 모델 대비 합리적인 수준에서 가격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조원홍 현대차 부사장은 “(새로운 고급 차 수요층인) 뉴럭셔리 고객들은 기존 럭셔리 차량 고객과 달리 세계 최초의 기술을 적용했다고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며 “본인에게 필요한 기술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디자인, 서비스를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대차의 발표에 증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대차 주가는 장중 전날 대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가 제네시스 브랜드 론칭 소식이 알려진 뒤 전날보다 1.85% 오른 16만5500원에 장을 마쳤다. 한국투자증권 서성문 연구원은 “현대차에 가장 필요한 것은 프리미엄과 친환경차 이미지”라며 “이번 브랜드 구축으로 프리미엄 시장 진출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강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