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9~30일(현지시간) EQE SUV를 타고 포르투갈 해안도로를 누비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DCU라는 기능이었다. DCU는 상황에 따라 4륜 구동과 2륜 구동을 자동으로 선택해준다.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에 쓰지 말자는 취지의 기능이다.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에서 서핑이 유명한 에리세리아로 이동하는 도중에 언덕길이 굉장히 많았는데 이때 저절로 4륜 구동으로 바뀌니 빠르고 힘있게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평지에서도 2륜으로 달리다 속도를 낼라 치면 스스로 4륜으로 바뀌며 가속이 빨리 붙었다. 2륜에서 4륜으로 전환될 때 불필요한 소리 없이 스르륵 바뀌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초보 전기차 드라이버’가 가장 어렵게 느끼는 회생제동도 EQE SUV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보통 회생제동 모드로 운전중에 가속 페달에서 발을 빨리 떼면 차가 급정거하곤 한다. 하지만 EQE SUV는 네 가지(D+, D, D-, D오토) 회생제동 모드가 있어서 감도를 조절할 수 있다. ‘D- 모드’를 적용하면 제동이 제일 심하게 걸리고, ‘D+ 모드’를 활용하면 제동이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걸렸다. 가장 유용했던 것은 ‘D오토’ 모드였다. 상황에 따라 차량이 스스로 제동의 강도를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기능이다. 포르투갈의 유독 곡선이 많은 도로를 달리다 보면 앞차와의 간격이 갑자기 가까워질 때가 있는데 이 경우에 회생제동이 더욱 강하게 걸리곤 했다. 주로 ‘D오토’를 해놓고 달리다보니 꼭 필요한 순간에만 제동이 강해지기 때문에 내연기관차를 운전할 때와 비교해 위화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벤츠라는 이름값을 하겠다는 듯 곳곳에 배치한 ‘고급화 포인트’도 인상 깊었다. 일단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 시스템’ 적용돼 문을 닫고 운전하면 마치 극장에 온 듯한 웅장한 음악 소리를 즐길 수 있었다. 스피커가 15개에 달해 어느 자리에 있건 풍부한 소리가 들렸다.
또한 EQE SUV만을 위해 히비스커스와 레몬 그라스를 조합해 만든 향이 차량 내부에 은은하게 퍼지도록 하는 기능도 있었다. 벤츠가 4번째로 선보이는 전기차 주행 음향인 ‘세린 브리즈’가 적용돼 이를 설정해놓으면 마치 내연기관차 같은 주행 소리를 구현할 수 있다.

전면부 보닛은 전기 설비가 들어가 탓에 소비자들은 열 수 없도록 막아놨다. 당연히 해당 공간에 트렁크처럼 물건을 수납하는 것도 안 된다. 사이드미러에 작은 골자리를 파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빗물의 간섭을 최소화한 것은 재치 있는 디자인이었다.
차량 내부는 휠베이스(앞뒤 바퀴 차축 사이의 거리)가 3m를 넘긴 덕에 앞뒤 좌석 모두 넓직한 느낌을 받았다. 12.3인치의 계기판과 세로로 긴 12.8인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가 기본으로 설정돼 있다. 좌석에는 천연가죽 대신에 인조 가죽 및 재활용 재료가 사용됐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은 잃지 않았다.
국내에는 올해 3분기(7~9월)에 4륜 구동 모델로 출시된다. 국내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7만 9050달러~9만 6350달러(약 1억 400만 원~1억 3000만 원)으로 발표됐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