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임사외이사제도는 사외이사의 대표 격인 선임사외이사를 선출해 사외이사 권한과 역할을 강화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금융권의 경우 ‘금융사 지배구조법’에 의거해 선임사외이사제도를 의무화하고 있다. 비금융권인 현대차그룹은 선임사외이사제도 도입 의무가 없다. 마찬가지로 삼성전자도 선임사외이사제도 의무가 없지만 그룹 차원에서 지난 2023년 10월 제도 도입을 공식화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이 삼성그룹보다 1년 반가량 늦게 선임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한 셈이다.
선임사외이사는 사외이사만이 참여하는 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할 권한을 갖는다. 사외이사들을 대표해 경영진에 경영자료 및 현안 보고를 요청하고 사외이사들의 의견을 모아 이사회와 경영진에 전달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사외이사진과 경영진, 주주 간 원활한 소통을 이끄는 역할도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이번 선임사외이사제도 도입이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로 확대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 통과를 고려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사회 내에 주주와 소통하는 공식 창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특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앞에는 순환출자 해소부터 그룹 지배력(지분) 강화, 상속 등 지배구조와 관련된 다양하고 복잡한 과제들이 놓여있는 상황이다. 회사충실의무만 있는 현행법만으로도 해소가 어려운데 상법 개정안 통과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주주충실의무가 더해지면 경영진의 배임죄 성립 요건이 기존 회사에 대한 손실에서 주주의 손해로 확대될 수 있다. 주주 차원에서 경영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해지고 형사 고소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총수나 경영진의 전반적인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최근 상법 개정을 앞두고 지분 블록딜이나 상장 폐지 등을 추진하거나 검토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경우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임사외이사제도 도입은 경영실적과 배당 확대 등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정성적으로 주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이사회 거버넌스 강화 등을 병행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대차와 기아, 모비스 등 3사는 이사회를 통해 선임사외이사제도 도입을 승인하고 각각 심달훈 현대차 사외이사와 조화순 기아 사외이사, 김화진 현대모비스 사외이사를 각각 초대 선임사외이사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사외이사진이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에 보다 자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선임사외이사제도 실효성 확보를 위해 ‘사외이사회’도 신설했다. 이사회 개최 전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안건을 독립적으로 검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는 치지다. 사외이사회는 회사별 사외이사 전원으로 구성돼 운영된다고 현대차그룹 측은 설명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선임사외이사제도 도입과 함께 사외이사회 신설, 이사회 내 위원회의 사외이사 비중 확대 등 제도 개선을 통해 더욱 투명한 경영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게 됐다”며 “주주가치를 제고하면서 이사회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