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안전공단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마포구 성산자동차검사소에서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에 대한 자동차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배터리 덮개가 약간 긁혔다고 생각했는데, 배터리를 통째로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소형 전기차를 타는 경남 김해의 직장인 이헌주 씨(44)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고속도로에서 앞에 달리던 트럭의 바퀴가 빠지며 이 씨의 차량을 덮친 것이다.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차량 전면부가 손상됐고 차량 하단에 있던 배터리 덮개가 약간 긁혔다. 이 씨는 “다친 곳도 없고 차량 손상도 심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기차 수리센터를 방문한 이 씨는 배터리를 통째로 교체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어 배터리 가격이 2600만 원이고 여기에 공임 등을 더하면 총수리비가 3200만 원이 나온다고 했다. 보조금을 제외한 차량 구입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 씨는 “수리센터에선 사고 당시 충격으로 배터리에 어떤 이상이 생겼을지 모르고 나중에 혹시라도 불이 나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보상도 못 받기 때문에 완전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결국 보험사에 차를 주고 2800만 원을 받으며 전손 처리를 했다”고 말했다. 전손 처리는 차량이 크게 파손돼 수리비가 차 가격보다 높다고 판단될 경우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한 뒤 폐차 처리하거나 중고차 매매업체에 판매하는 것이다.
● 툭하면 전기차 배터리 통째 교체
국내 전기차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18년 신규 차량 중 1.7%에 불과했던 전기차는 지난해 9.8%로 4년 만에 5배 이상이 됐다. 누적 전기차 보급 대수는 현재 40만 대가량인데 2030년까지 300만 대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제는 전기차 보급에 비해 수리, 정비 등 안전 관련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기차 이용자들은 차에 문제가 생겨 수리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먼저 첨단기술이 투입된 만큼 내연기관차보다 수리단가가 높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의 ‘자동차보험 자차 담보 평균 수리비(공임)’는 회당 270만 원이다. 일반 내연기관차의 수리비(197만 원)보다 37.1% 높다.
특히 수백 개의 셀로 이뤄진 배터리에 충격이 가해지면 안전상의 이유를 들며 통째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다. 홍영선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미래모빌리티실증센터장은 “언제 배터리 전체를 바꾸고, 언제 일부 모듈만 바꾸면 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이용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큰돈을 내고 배터리 전체를 교체하는 경우가 많다”며 “연구와 실험을 통해 경미한 손상의 경우 일부 모듈만 교체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비소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내연기관차의 경우 동네마다 카센터가 있다. 반면 전기차 수리가 가능한 정비소는 전체의 5% 미만이다. 이 때문에 한번 고장나면 수리까지 한두 달 걸리는 경우가 예사다.
● 배터리 정기 점검 필수
전문가들은 전기차 수리 정비 인프라가 부족한 만큼 정기 점검을 통해 고장을 미리 막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하지만 전기차 운전자 중에는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한 점검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내연기관차처럼 엔진오일 교체 등을 이유로 정기적으로 정비소를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역시 1년에 한 번 또는 주행거리 1만 km 정도마다 서비스센터를 찾아 배터리 셀의 온도 및 전압, 모터와 인버터의 상태 등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면 더 안전하게 오래 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공단)이 지난해 8월 도입한 전자장치진단기(KADIS)를 활용하면 더 편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다. KADIS는 차량에 장착된 단자에 진단기를 부착해 배터리 결함 등을 확인하는 장비다. 공단이 운영하는 검사소 59곳, 민간 검사소 300여 곳에서 이용할 수 있다.
공단은 지난해만 전기차 9086대를 검사해 배터리 융착 등 93건의 이상을 발견했다. 공단 관계자는 “현재 배터리 안전성 검사가 의무화돼 있지 않다 보니 민간 검사소 중에는 KADIS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며 “전기차 배터리 검사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개발한 ‘B-라이프케어’처럼 전기차에 장비를 장착하면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배터리 성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 수입 전기차 ‘점검 사각지대’
전기차 안전을 위한 최선의 조치는 정기 점검이지만 일부 수입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점검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점검이 어려운 상황이다.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자동차 업체는 KADIS 운용을 위한 자료를 공단에 제출해야 한다. 공단은 이를 기초자료로 활용해 배터리 점검을 실시하게 된다. 하지만 CATL 등 중국 업체의 배터리를 장착한 일부 전기차 업체들은 기술보안을 이유로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공단에 따르면 KADIS를 활용해 배터리 검사를 할 수 없는 전기차는 승합차 62개 모델(약 3000대), 화물차 29개 모델(약 6000대)에 달한다.
특히 미국 테슬라는 KADIS를 연결할 수 있는 접합부를 아예 만들어놓지 않았다. 무선으로만 차량을 업데이트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이미 5만여 대가 팔린 테슬라의 전기차는 국내 시스템으로는 점검이 불가능한 것이다.
김승기 삼성교통문화안전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전기차 시장은 급격히 팽창하고 있지만 인프라 구축과 수입차 규제 등의 측면에서 아직 보완할 부분이 많다”며 “기술 경쟁 때문에 정보 공유가 쉽지 않겠지만 전기차 시장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업체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터리는 90%가량 충전을… 완충하면 전압 높아 불안정”
전기차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Q&A
비오는 날-보닛 열때 감전 주의를
비오는 날-보닛 열때 감전 주의를
“이번에는 전기차를 사야 하나?”
최근 전기차 구입을 고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전기차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신차의 약 10%를 차지하며 급속도로 보급되고 있지만 화재 등 안전에 대한 불안도 여전한 상황이다. 전기차 안전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Q&A로 정리했다.
―비 올 때 전기차를 충전하면 감전될 수 있나.
“국가통합인증마크(KC)를 받은 충전기는 이용자가 손으로 만지는 부분에 전류가 통하지 않게 설계돼 있다. 비가 내려 충전기에 물이 스며들면 보호 장치가 작동해 전류를 차단한다. 다만 감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차량이나 충전기의 충전단자가 파손됐다면 순간적으로 누전이 발생할 수 있다. 비를 피하기 어려운 곳에선 최대한 물기가 충전단자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
―견인 시 차량 손상이 많다던데….
“전기차는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전기모터가 발전기로 변환돼 전기를 생산한다. 앞바퀴만 들어올려 견인할 경우 뒷바퀴가 구르면서 발전 기능이 작동한다. 이에 따라 모터 내부 온도가 올라가 손상이 생길 수 있고, 최악의 경우 화재까지 발생할 수 있다. 견인차에 차량을 완전히 싣거나, 전기차 바퀴를 ‘둘리’라고 부르는 작은 받침대에 올려 견인해야 한다.”
―배터리를 완충하면 화재 위험이 커지나.
“전기차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이 내장돼 과충전을 자동 제어한다. 완충으로 인한 화재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이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90%가량만 충전하는 게 좋다고 입을 모은다. 완충 상태에선 배터리 전압이 상대적으로 높고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지하주차장에서 충전하면 화재 위험 크지 않나.
“정부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배터리 화재는 일단 발생하면 1000도 넘게 올라가고 불길이 잘 잡히지 않는다. 더구나 지하주차장은 입구 높이가 낮아 소방차 진입이 어렵고, 전기차 화재 진화 장치 활용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전기차 충전기가 있는 지하주차장에 소방설비 의무 설치가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 보닛을 열 때 주의할 점이 있나.
“전기차 보닛 안에 주황색 전선이 있는데, 이 전선은 만지면 안 된다. 300V(볼트) 이상의 고압 전류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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